지역 출신 신입생 뽑아 '10년간 의무복무'…학비·기숙사비 등 전액 지원
의석 우위 점한 야권, 입법 속도낼 듯…시민·보건의료·노동단체도 '지지'
공공의대는 의사들, 정부 모두 비판적…의정갈등 속 복잡한 '셈법'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 야권 의원들이 공공의대 설립을 내용으로 하는 '야권발 의료개혁' 법안을 발의하면서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사들과 정부 사이의 갈등이 '의사들과 정치권 전반'의 싸움으로 확산할 조짐이 보인다.
공공의대는 의사 단체들이 의대 증원만큼이나 거세게 반발해온 정책으로, 의사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하며 시작한 의료 공백 사태가 진정도 되기 전에 갈등이 새로운 양산으로 퍼질 가능성이 있다.
◇ '의무복무 이행 안 하면 의사면허 취소'…"증원만으론 역부족"
2일 국회와 의료계,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71명 의원은 이날 '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국가와 지자체가 공공보건의료인력을 양성할 공공보건의료대학·대학원을 설립해 운영하도록 하는 내용인데, 학생들이 졸업 후 의료취약지의 의료기관 등에서 10년간 '의무복무'를 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신입생은 해당지역 고교 졸업자·거주자 중 60% 이상을 선발하고, 입학금, 수업료, 교재비, 기숙사비 등을 전액 국고나 지자체에서 지원한다.
다만 학업을 중단하면 지원받은 돈을 반환해야 하며, 의사가 된 뒤 의무복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의사 면허는 취소된다.
공공의대 신설은 더불어민주당의 지난 총선 공약이며, 시민단체나 보건의료단체, 노동단체 등 시민사회도 강력하게 지지하는 정책이다.
이날 국회에서는 야권의 박주민·강선우·박희승·서영석·장종태·김윤·서미화 의원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보건의료노조, 한국노총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법 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의대 증원이 결정됐지만, 단순 증원으로는 지금의 필수의료 공백과 지역의료 격차를 해소하기 역부족"이라며 "국가가 직접 공공의사를 양성하고 배치할 새로운 근거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야권은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법안의 입법을 추진했었다. 법안은 보건복지위를 통과했지만,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경실련, 보건의료노조 등 282개 시민사회단체는 '공공의대법 제정을 촉구하는 공동행동'을 결성하며 법안 처리를 지지하고 있다.
◇ 증원보다 더 싫은 '공공의대'…"주거지 선택 자유 제한"
의료계가 그동안 '2천명'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정부·여당과 갈등을 빚어왔지만, 사실 공공의대 신설은 의료계가 의대 증원만큼이나 거세게 반대하고 있는 정책이다.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는 공공의대 신설·지역의사제 도입을 '10년간 400명씩' 의대 증원과 함께 추진했는데, 당시 의사들은 증원보다 공공의대 신설에 더 격하게 저항했다.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이탈하고 의대생들이 의사 국가고시를 거부하는 등 반발이 거세지자 결국 정부는 계획을 접어야 했다.
이는 안 그래도 보수 성향이 강한 의사 집단의 여당 지지 성향이 더 굳어진 계기가 됐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야권과 의료계가 '비과학적인 증원 추진'이라는 대정부 비판을 함께하며 청문회에서 한목소리를 냈지만, 의대 증원 자체는 사실 야권의 전통적인 정책이기도 하다.
의료계가 공공의대 신설에 반대하는 것은 일정 기간 지역 복무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거주지와 직업 선택의 자유에 반해 위헌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결국 의무 복무 후 필수·지역의료에서 이탈하면 의사 수만 늘릴 뿐이며, 의사 사이에서 일반 의대와 공공의대 출신으로 '계층'이 생기는 부작용도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의대 증원만으로는 늘어난 의사들을 필수·지역의료로 유인하기 어려운 만큼, 공공의대 신설 등으로 특정 진료과나 지역 근무를 강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공공의대 설립 시 배출 인력이 일할 것으로 예상되는 공공병원은 코로나19 팬데믹이나 이번 의사 집단행동 등 비상시에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의사 구직난과 만성 적자, 환자 이탈 등에 시달리고 있다.
◇ 정부도 반대 입장…의대 증원 갈등과 얽혀 정부-야권-의료계 셈법 '복잡'
의대 증원을 놓고 장기간 의료계와 갈등을 겪고 있는 정부·여당은 공공의대 도입과 관련해서는 의료계와 비슷한 입장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작년 12월20일 공공의대법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자 "2020년 추진 당시 학생 불공정 선발 우려와 의무 복무의 위헌성, 실효성과 관련한 사회적 논란으로 논의가 중단됐다"며 "이러한 쟁점들을 어떻게 보완할지에 대한 추가 논의 없이 의결을 추진한 것은 상당히 유감이고,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의무 부여 대신 계약을 통해 의사들을 특정 지역에 근무하도록 하는 '지역필수의사제'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의대생이 정부, 지자체와 계약해 장학금과 수련비용 지원, 교수 채용 할당, 거주 지원 등의 혜택을 받는 대신 일정 기간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도록 한다. 의사가 충분한 수입과 거주 지원을 보장받고 지역 필수의료기관과 장기근속 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공공의대법 추진에 관한 정부·여당과 야권의 대립은 의대 증원과 관련해 의정 갈등이 끝나지 않은 상황과 맞물려 있어 향후 여야 간, 의정 간 갈등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복잡하다.
의석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야권이 법 제정을 강행할 경우 정부는 거부권을 행사하며 의료계에 화해의 손을 내밀 수 있다.
한편으로는, 내년 이후 증원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하는 정부가 '의료개혁'이라는 큰 틀에서 공공의대 설립에 뜻을 모으는 '협치'를 할 가능성도 있다.
의대 증원과 공공의대 모두를 반대하는 의료계는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처지다.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와 지자체가 공공의사 확보를 위해 적극적인 개입과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며 "공공의대법에 대해 정부와 국회가 적극적인 입법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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