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축구판이 난장판이 돼버렸다.
대한축구협회가 차기 대표팀 사령탑으로 홍명보 울산 HD 감독을 선택하자 불기 시작한 후폭풍이 좀처럼 잦아들 낌새를 보이지 않는다.
외국인 감독을 원했던 팬들은 실제 외국인을 뽑는 방향으로 가는 듯했던 흐름이 막판에 뒤바뀌자 충격을 받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협회를 향한 날 선 비판의 댓글을 올린다.
한국 축구의 '영웅'이던 홍명보 감독은 두 번째 대표팀 사령탑 도전을 시작하기도 전에 조별리그 탈락의 실패를 맛본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 이상 가는 인신공격성 비난을 한 몸에 받는다.
홍명보 감독을 누구보다 사랑한 울산 서포터스는 '감독님을 빼 간' 축구협회를 증오하고, '순순히 내준' 구단에 실망을 감추지 않는다. 홍 감독은 울산에 두 차례나 K리그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구단은 10일 오후 7시 30분 킥오프하는 광주FC와의 정규리그 홈 경기에서 서포터스가 어떤 방식으로든 '목소리'를 낼 것이라 보고 긴장하고 있다.
혼란을 낳은 건 누가 뭐래도 축구협회다.
새 감독을 뽑는 데 5개월이나 걸리고, 두 차례나 임시 감독 체제로 A매치를 치르게 한 건 변명이 불가능한 실책이다.
특히 올림픽 본선 진출에 도전하던 23세 이하(U-23) 대표팀의 황선홍 감독을 3월 A매치 때 대표팀 임시 감독 자리에 앉힌 건 '최악의 수'였다.
결과에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던 정해성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은 올림픽 본선 실패가 현실화한 뒤에도 위원장직을 유지했다.
그러더니 대표팀 감독 선임 막바지 단계에서 돌연 자리에서 물러났다. 사퇴의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
감독 선임 작업을 이어받아 마무리 지은 이임생 기술총괄이사만 '독박'을 쓴 모양새가 돼버렸다.
홍명보 감독이 아직 말을 아끼는 가운데 여론의 중심에 선 인물은 전력강화위에 위원으로 참여한 박주호 해설위원이었다.
박주호 위원은 홍명보 감독 내정 발표 다음날인 8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전력강화위원 사퇴하겠습니다'라는 섬네일을 단 영상을 올리고 전력강화위원회에서 있었던 일이라며 '폭로'했다.
그는 "국내 감독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위원들이 많았다"면서 "지난 5개월이 허무하다. 전력강화위원회가 필요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절차 안에서 이뤄진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축구협회의 설명과 전력강화위원회 논의 과정을 잘 아는 외부인들에 따르면 홍 감독 선임 과정에 적어도 '절차적 문제'는 없었던 걸로 보인다.
국내 지도자가 감독을 맡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는 건 애초 문제가 될 부분이 아니다. 각기 다른 의견을 하나로 모아내는 게 위원회의 역할이다.
위원장 공석 상황에서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대신 선임 작업을 이어간 것을 문제 삼을 수 있겠으나 위원들은 이 이사가 최종 후보를 정해도 된다고 '동의'했고, 박주호 위원도 그중 하나였다.
박주호 위원은 5명의 후보를 추리는 과정에 참여했으며, 이임생 이사가 최종 후보를 정하는 것에 위임했다.
축구협회는 박주호 위원이 '비밀유지 서약'을 했으면서도 이를 어겼다며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그가 개인 유튜브를 통해 폭로한 것에 대해서도 '영리 목적' 아니었겠냐며 문제 삼아야 한다는 분위기다.
9일에는 이영표 해설위원이 JTBC와 KBS에 잇달아 출연해 축구협회를 비판했다.
이영표 위원은 홍 감독 선임에 대해 "K리그 팬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전력강화위원들과 소통을 한 후 발표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생략됐다"고 말했다.
감독 선임 과정에 절차적 문제가 있었다는, 박주호 위원과 같은 취지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나를 포함한 축구인들은 행정을 하면 안 된다"며 뜬금없는 '자아비판'을 했다.
은퇴 뒤 유튜버, 방송인으로 활동한 박주호 위원과 달리 이영표 위원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축구협회 부회장을 지내 축구협회의 사정을 잘 안다.
그는 축구협회 부회장 시절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업무 조율을 무난하게 소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다 2023년 4월 '승부조작 축구인 사면 및 번복 사건' 때 부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사면 결정이 내려진 이사회에서 반대 의사를 밝히지 않았던 그는 여론이 악화하자 젊은 축구인 이사 2명과 함께 '가장 먼저' 사임했다.
이제 홍명보 감독이 입을 열 차례다. 이날 울산은 광주FC와 경기를 치른다.
경기에 앞서 취재진은 라커룸에서 양 팀 감독과 비공식적인 만남을 갖는 게 K리그 관례다. 경기 뒤 공식 기자회견에서 홍 감독은 다시 취재진 앞에 앉는다.
홍명보 감독이 어떤 말을 해도 또 한 번 '폭풍'이 몰아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경기에는 48명의 기자가 취재신청을 했다. 지방에서 열리는 어지간한 A매치 취재진 규모를 뛰어넘는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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