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구구식 대표팀 감독 선임 후폭풍
'내부고발자' 박주호 법적 대응 협박
축구 레전드도 반발, 비난 한목소리
홍명보 기자회견은 부정여론만 키워
최고 책임자 정몽규 회장 침묵 일관
깔끔하지 못한 협회 일처리 도마위
동네 구멍가게도 이런 식으로 운영하지는 않는다.
대한축구협회는 13일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 공식선임을 발표했다. 23명의 이사 중 21명이 서면 결의를 통해 홍 감독 선임에 찬성하면서 홍 감독은 공식적으로 대표팀 사령탑이 됐다.
이번 선임을 통해 홍 감독은 융단 폭격을 당하고 있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 협회를 저격했고, 울산 팬을 향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라며 안심시켰던 과거 발언과 다른 행보인 만큼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기자회견을 통한 해명, 혹은 사과도 시원하지 않았다. 추상적이고 애매한 답변은 울산이나 K리그 팬이 답답해하던 부분을 긁어주지 못했다. 부정적 여론을 뒤집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박지성, 이영표 등 한국 축구 레전드마저 강하게 비판하는 상황에서 홍 감독은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만신창이가 된 모습이다. 그 동안 협회,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책임자인 정몽규 회장은 뒤에 숨기 급급하다. 홍 감독을 대표팀 사령탑으로 내정한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지만 정 회장은 입장을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계획이 없다는 게 협회의 설명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어설프고 무능력한, 주먹구구식 선임에 있다. 지난 2월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을 경질한 후 무려 5개월간 시간을 끌고 내린 선택이 K리그 현직 국내 사령탑이라는 것은 그동안 협회가 소중한 시간을 허비했음을 의미한다. 초기에 외국인 사령탑으로 방향을 잡은 후 가장 적합했던 후보 제시 마시 현 캐나다 감독과 계약 직전까지 갔지만, 협회는 이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결국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이 임기 도중 물러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임무를 맡아 대리했지만, 내부에서의 의견이 통일되지 못한 채 개인 권한으로 홍 감독을 선택했다.
홍 감독을 선임한 과정을 보면 코미디에 가깝다. 이 이사는 유럽에서 거스 포옛, 다비드 바그너 감독을 만나고 돌아온 5일 곧바로 홍 감독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까지 건너가 만난 후보를 전력강화위원회를 통해 제대로 평가하지도 않고 홍 감독을 후보로 결정했다는 뜻이다. 대표팀 경험이 있고, 울산을 2연속 K리그 정상에 올려놓은 홍 감독이 포옛, 바그너보다 나은 후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엄연히 존재하는 시스템과 조직을 무시했다는 점에서 이번 선임에 정당성을 부여하긴 어렵다. 게다가 협회는 전력강화위원회 내부 분위기를 전하고 비판한 박주호 위원에게 법적 대응을 운운하는 한심한 태도까지 보였다.
이 모든 과정에서 대외 전략 수립은 '빵점'에 가까웠다. 대표팀 사령탑은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 자리다. 후폭풍을 예상하고 데미지를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 필요한데 협회는 그조차 대비하지 못했다. 그나마 덜 관심을 받고 싶었던 것인지 주말인 토요일 오후에 감독 선임 확정 문자를 보내는 한심한 수준의 행동이 전략이라면 전략이었을까.
협회는 한국 축구를 담당하는 최상위 조직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의 행태를 보면 K리그에서 창단한 지 2~3년 정도밖에 안 된 구단만도 못하다.
정다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