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레이트, 미국 직장인 36% 부업
고용 불안·재택근무 정착으로 확산
젊은층은 더 선호, 2명 중 1명 투잡
한인 이모씨는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한 차례 실직의 아픔을 겪으면서 재정난을 경험했다. 이후 이씨는 두 회사에서 동시에 일하는 투잡을 뛰게 됐다. 고용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지만 지난 몇 년 동안 고금리에 생활 물가마저 급등하면서 아예 투잡 직장인으로 자리를 굳혔다. 이씨는 "각종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생활비 부담도 커졌다"며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회사 2곳에서 괜찮은 연봉을 받고 있어 어려운 시기를 잘 버텨내고 있다"고 했다. 요즘 미국 내 직장인 사이에선 투잡을 뛰는 직장인들이 크게 늘면서 겸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투잡은 물론 쓰리잡 등 소위 'N잡'을 뛰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개인금융 컨설팅업체 뱅크레이트가 지난달 10~12일에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성인의 36%가 본래 직업 이외에 부업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직장인 3명 중 1명은 투잡을 뛰고 있는 셈이다. 2개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 중 32%가 부업을 하지 않으며 생활을 할 수 없다고 답하고 있어 부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입장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역대급 인플레이션이 최근 들어 둔화하고 있지만 2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경제적으로 부업의 필요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투잡 직장인 크게 늘어난 이유로 재택근무가 꼽히고 있다. 인터넷 환경을 배경으로 코로나19 사태 때 도입된 재택근무가 미국 직장 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현실이 투잡 직장인을 양산하는 데 크게 일조하는 있는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발 정리해고를 경험하면서 고용 불안을 겪었던 직장인들이 여러 직업을 갖고 있어야 살 수 있다는 인식도 한몫하고 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직장과 직업에 대한 인식 변화도 투잡 확산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젊은 세대일수록 노동 시간과 방식에 대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더 많이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뱅크레이트 조사 결과를 보면 Z세대 직장인의 48%가 부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명 중 1명은 투잡이다. 이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23%에 비해 2배가 넘는 높은 수준이다.
투잡 직장인이 늘어난 현상은 비단 미국만의 일은 아니다. 한국의 부업 문화도 마찬가지다. 한국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월평균 투잡 인구는 57만5000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 직장 문화 속성상 투잡 사실을 숨기고 있는 소위 릫샤이릮(shy) 투잡 직장인을 포함하면 투잡 인구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투잡 열풍은 상대적으로 연봉이 높은 대기업 직장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의 직업 중개 플랫폼 커리어데이에 따르면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에 근무하고 있는 회원 수가 4610명에 달한다. 이들 대기업 직원들은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의 업무 컨설팅이나 프로젝트 계약, 자기 소개서 첨삭 등으로 투잡 수입을 올리고 있다.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