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일 앞두고 트럼프 피격·바이든 사퇴 연이은 돌발 변수에 '출렁'
국제사회, 우크라전·가자전쟁 와중…차기 美대통령 입김 '결정적'
서방 언론 "해리스, 트럼프에 역부족…손쉬운 대관식 말아야" 훈수도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차기 미국 대선을 100여일 앞둔 시점에 미국 대선판이 잇단 핵폭탄급 이슈로 요동치자 전 세계의 이목이 새삼 집중되고 있다.
불과 3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리턴 매치' 구도에 의문의 여지가 없던 미국 대선 정국은 돌발 변수가 연이어 터지면서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13일(현지시간) 유세 현장에서 발생한 저격으로 암살을 가까스로 모면하면서 크게 출렁인 미국 대선판은 고령으로 인한 인지력 논란으로 사퇴 압박을 받아온 바이든 대통령이 21일 민주당 대선 후보직에서 전격 물러나면서 사실상 시계제로 상태에 빠졌다.
대선 후보 공식 지명 절차만을 남겨둔 현직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공식 포기하는 미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건이 발생하자 국제 사회는 이번 일이 미 대선의 최종 향배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국제 질서에 미치는 영향력이 누구보다 큰 자리인 만큼, 향후 4년 간 서방 진영의 '좌장' 노릇을 할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는 전지구적 운명을 좌지우지할 중차대한 변수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2년 반을 꽉 채워가는 우크라이나 전쟁, 10개월을 향해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벌이는 가자지구 전쟁 등 유럽과 중동에서 진행 중인 2개의 굵직한 전쟁으로 국제 정세가 어느 때보다 불안정한 현 시점에 미국의 대통령이 갖는 무게감은 여느 때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세 도중 날아온 총탄을 백지 한장 차이로 비껴가는 행운까지 따르면서 백악관 복귀를 한층 더 자신하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바이든 대통령의 낙마가 미 대선에서 과연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아직 명확하지는 않다.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로 민주당이 더 큰 혼란에 빠지면서 '트럼프 2기' 가능성이 한발짝 더 다가온 것인지, 아니면 바이든 대신 좀 더 경쟁력 있는 후보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항마로 나서면서 피격 사건 이후 탄력이 붙은 트럼프 대세론이 극적으로 저지될 수 있을지는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1기에 적국과 동맹 모두를 상대로 미국 우선주의(아메리카 퍼스트)를 앞세운 정책을 펼치며 국제 질서를 흔들어 놓은 전력이 있다.
그는 지난 18일 이뤄진 공화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도 미국 우선주의와 신(新)고립주의, 그리고 이에 기반한 동맹 압박 및 보호 무역주의 기조 강화를 재확인하며 전 세계의 불안감을 부채질했다.
특히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로서는 바이든 정부의 군사 지원을 못마땅해 하며 당선 즉시 러시아와의 협상을 통해 전쟁을 끝내겠다고 큰소리 치는 트럼프의 재집권은 악몽이 될 수도 있는 만큼, 미 대선의 전개 방향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방 정상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 사퇴를 발표하자 일단 그가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을 존중한다는 메시지를 냈다.
아울러, 바이든 대통령이 대통령이 그동안 민주주의를 지키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등 노력해온 점도 높이 평가한다고 강조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성명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결정을 존중하며 그의 남은 대통령직 임기에 함께 일할 것을 고대한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이제까지 놀라운 경력 내내 그랬듯이 미국민에 최선의 이익이라고 믿는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엑스(X·옛 트위터)에 "내 친구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조국과 유럽, 세계를 위해 많은 것을 성취해 왔다"며 "그 덕분에 미국과 유럽은 가까운 협력 관계이고 나토는 강하다"고 평가했다.
동맹 강화에 기여해온 바이든 대통령의 성과를 높이 평가한 이런 메시지에는 '트럼프 2기'에 대한 서방의 경계심이 내포된 것으로 읽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그동안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보내준 지지에 사의를 표하면서도 그의 대선 후보 사퇴가 우크라이나전쟁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는 듯한 모습을 드러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은 역사상 가장 극적인 순간 우리나라를 지원해줬고, 푸틴 대통령을 막는 걸 도우면서 이 끔찍한 전쟁 내내 우리를 계속 지원해 줬다"면서 "우크라이나와 유럽 전역의 현 상황은 (그때) 못지않게 어렵고, 우리는 미국의 지속적이고 강력한 리더십이 러시아의 사악함이 승리하거나, 침략이 성공하는 걸 막아내길 진심으로 희망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2기'에 대한 불안감은 서방 언론의 훈수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퇴를 밝히면서 자신의 뒤를 이을 대선 후보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공식적으로 지지했지만, 서방 유력 언론은 해리스 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를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조 바이든, 민주당에 재집권을 위한 2차 기회를 주다' 제하의 기사에서 민주당이 암살을 모면한 후 47대 미국 대통령 등극이 유력해진 트럼프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 바이든이 준 기회를 허비하지 않으려면, 해리스 부통령을 대항마로 내세우는 손쉬운 결정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매체는 민주당에는 인재가 많다면서, 시간이 촉박하긴 하지만 적절한 경쟁 방식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 대신 트럼프에 맞설 대선 후보를 결정해야만 진정한 통합을 이루고, 후보로서의 정당성도 확보함으로써 승리를 위한 경쟁력을 부여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도 경선을 치를 경우 분열과 혼란에 빠질 것을 우려해 민주당이 서둘러 해리스 부통령을 대선 후보로 결정하는 대관식을 치르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겠지만, 이는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ykhyun1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