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영역 진입…민주당과 해리스, 전례없는 상황 직면"
선출직 첫 도전, 뒤집기로 당선…대선 도전 때 낙마했다 러닝메이트 부활
2020년 대선 도전 땐 경선 초반 낙마, '러닝메이트'로 부활
부통령 취임 후 행보도 순탄치 않다 대선 구원투수 '변신' 눈앞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21일(현지시간) 재선 도전 포기로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로 부상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를 업고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더라도 대선까지 4개월도 채 남지 않은 동안 당내 분열을 봉합하고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세를 꺾어야 한다. 더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피격 사건 이후 '대세론'에 탄력이 붙은 상태다.
버지니아대에서 대통령사를 연구하는 러셀 라일리는 "내가 아는 한 역사에서 (현 민주당 상황과) 직접적으로 유사한 사례는 없다"면서 어떻게 전개되더라도 민주당과 해리스 부통령은 미지의 영역(uncharted territory)에 들어서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해리스 부통령은 정치 인생에서 이런 전례 없는 도전을 종종 맞닥뜨렸으며, 그러한 고비를 맞을 때마다 주변의 예상을 깨고 자신의 운명을 되살리곤 했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평가했다.
WP는 '해리스는 컴백의 이력을 갖고 있다. 그에게는 또다시 그렇게 해야 할 (대선까지) 107일이 남아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전례없는 전투 상황은 해리스에게는 새로운 게 아니라며 그는 정치 신인 시절부터 예상을 깨고 버텨왔다고 전했다.
해리스 부통령의 선거운동 이력은 시작부터 '반전'이었다.
첫 선출직 도전인 2003년 샌프란시스코 검사장 선거에서 당시 현직 검사장이던 테런스 할리넌과 맞붙었는데 1차 투표에서는 할리넌이 1위, 해리스가 2위였다. 하지만 결선 투표에서는 해리스가 큰 격차로 할리넌을 누르고 당선됐다.
재선에 성공하며 8년간 샌프란시스코 검사장을 지낸 뒤 2010년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선거에 나섰을 때도 공화당 소속인 로스앤젤레스 지방검사장 스티브 쿨리를 상대로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
접전이었던 당시 선거에서 마지막 몇주일 동안 해리스는 쿨리에게 열세였고 선거 당일 밤 쿨리는 개표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일찌감치 승리를 선언했다. 하지만 집계가 계속되면서 해리스가 선두를 탈환했고 이후 우편투표 등까지 모두 집계한 결과 1%포인트 미만 박빙의 차이로 해리스가 당선됐다.
재선을 거쳐 6년간 주 법무장관을 역임한 뒤 캘리포니아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선출돼 2017년 중앙 정치 무대에 진출한 해리스 부통령은 2019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며 정치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이자 기회를 맞는다.
처음에는 바이든 대통령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쟁쟁한 인사들이 포함된 후보군 20여명 가운데 존재감이 크지 않았지만 그해 6월 첫 TV 토론에서 과거 인종차별주의 성향 공화당 상원의원들과 협력했던 바이든의 이력을 공격하며 주목받았다.
당시 토론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당신은 그들과 버싱 반대에 협력했다. 당시 캘리포니아에 매일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던 소녀가 있었다. 그 작은 소녀가 나"라고 울먹였다. 바이든은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고 해리스 부통령의 개인적 상처는 유권자들의 공감을 샀다.
버싱(busing)은 거주지가 달라 학군도 나뉘어 있던 흑백 학생들이 잘 섞이도록 버스로 학생들을 상대 학군으로 실어 나르던 정책을 말한다.
해리스는 초등학생 시절 이 정책에 따라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부유한 백인 동네 학교로 등교했던 경험을 거론하며 바이든을 몰아붙였고, 당시 토론의 최대 승자로 떠오르며 지지율도 크게 뛰었다.
그러나 인지도 상승은 다른 후보들의 집중 견제를 불렀고 자금난과 캠프 내부 갈등이 겹치면서 그해 12월 경선 레이스에서 하차하고 만다.
경선 초반에 대선 주자 꿈을 접는 뼈아픈 실패를 겪은 해리스는 2020년 8월 바이든의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로 낙점받으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리고 대선 승리로 미국 최초의 흑인·아시아계 부통령이자 여성 부통령이 된다.
부통령으로서의 행보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2021년 6월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으로 과테말라를 방문했을 때는 기자회견에서 미국행을 꿈꾸는 중미 이민자들을 향해 "미국에 오지 말라"(Do not come)고 말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과테말라인들이 고국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미국이 지원할 테니 위험한 미국행에 나서지 말라는 취지였지만 지나치게 단호한 수사에 당 안팎에서 비난을 샀다.
취임 1년이 됐을 즈음에는 비서실장과 수석대변인 등 부통령실 핵심 인력들이 연이어 이탈하면서 해리스 부통령의 조직 관리능력에 의문이 다시 불거졌다
하지만 6월 연방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로 낙태 허용 여부를 각 주의 결정에 맡기게 되면서 낙태권 문제가 정치권의 핵심 이슈로 떠오르자 해리스 부통령은 다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고 WP는 짚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바이든 대통령은 낙태권은 인정하지만 당의 낙태 관련 입장을 명확히 밝히기는 주저했는데, 해리스 부통령이 그를 대신해 전면에 서서 낙태권 옹호에 나서며 대(對)트럼프 공격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지난달 말 첫 대선 토론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흔들리자 해리스 부통령은 '대체 후보'로 꾸준히 거론됐고, 결국 바이든의 중도 하차로 러닝메이트에서 대선 후보로 변신하는 인생 최대의 반전을 눈앞에 두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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