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의 달 6월만 되면 바빠요
'전우가 남긴 한마디' 허성희 가수 LA 방문
"소년등과일불행(少年登科一不幸)."
"소년이 높은 성적으로 과거에 합격하는 것은 인생의 큰 불행 중 하나"라는 뜻으로, 송나라의 학자 정이가 한 말이다. 조기 성공이 반드시 인생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정이의 말은 가수 허성희에게 꼭 맞는 말이기도 하다.
가수 허성희를 기억하는 한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허 가수는 1977년 '전우가 남긴 한 마디'로 데뷔와 함께 일약 한국 가요계를 주도했던 가수였다. 이 한곡으로 6.25에 이어 월남전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던 당대 한국인들의 마음을 따스이 보듬어 주었고, 거의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보훈 호국의 달 6월만 되면 허 가수의 전우가 남긴 한 마디는 빠지지 않고 불리는 노래가 됐다.
이 곡은 허 가수의 표현 대로 "대박이 난 노래"였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1년 1번 기억나는 가수"로만 기억되는 한계도 그녀에게 안겨 주었다. 허 가수는 "노래가 히트할 때는 어디에서나 어느 방송에서나 전우가 남긴 한 마디를 불러도 환영 받았다"면서 "어느 순간엔가 6월에만 기억나는 가수가 되고 말았다"고 했다. 그렇지만 허 가수는 1년에 1번 기억하는 가수라도 기억의 대상이 되는 것에 감사한다. 노래를 할 수 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허 가수가 LA를 들린 것도 단순한 그 이유에서다. 허 가수는 "콜로라도주 한인회의 광복절 기념행사에 초대돼 공연했다"며 "LA에서 공연하는 게 꿈이기에 귀국길에 LA를 들렸다"고 말했다.
허 가수의 LA 공연 꿈은 앞으로 2년 후면 현실이 될 것 같다. 재미한국영화인협회(회장 정광석)가 오는 2026년 50주년을 맞아 허 가수를 초대해 기념 공연을 예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 가수에게는 묘한 자유로움이 있다. 아마 그런 자유로움이 정상의 자리에서 돌연 미국으로 오게 한 동인이 됐을 것이다. 허 가수는 "별다른 이유없이 그냥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서 미국에 왔다"며 "당시 우물 안 개구리처럼 답답한 마음이었다"고 회상했다. 미국에 온 허 가수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그래도 클럽에서 노래 부르는 게 제일 좋았다. 허 가수는 "전우가 남긴 한 마디가 아니라 관객이 원하는 노래,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고 말했다.
이제 중년의 가수가 되어버렸지만 노래에 대한 열정은 그대로다. 2~3년마다 새 앨범을 발매하고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그녀다. 허 가수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이 먹음에서 오는 불리함을 열심으로 벌충하겠다는 게 허 가수의 마음가짐인 셈이다.
"6월의 가수에서 늘 불리는 가수가 되는 게 꿈"이라는 허 가수의 말에서 앞으로 그녀 행보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