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10명 중 4명 은퇴 無대책
양육 및 대출 등 생활비 부담 큰 탓
경제난으로 '지각 은퇴'에 취업 유지
한국도 은퇴 미루는 고령층 증가
"아직 30대 후반이란 나이 때문인지 은퇴 후 생활에 대한 걱정을 심각하게 해 본 적은 없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직장인인 한인 최모씨에게 은퇴는 아직 먼 나라 이야기다. 최씨는 "은퇴 후 삶에 대해선 50대쯤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이어서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에게 들어가는 교육비를 비롯해 주택담보대출(모기지)과 학자금 대출 상환금에 자동차 할부금과 각종 보험료를 매달 지불하다보면 아내와 함께 버는 급여론 빠듯한 살림이다. 최씨는 "매달 부담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보니 노후 대비를 할 겨를이 없다"며 "은퇴하면 얼마나 돈이 들어갈지 가늠하기도 어려워 저축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62세인 한인 이모씨는 여전히 중견업체에 다니는 직장인이다. 회사가 원한다면 힘이 들더라도 직장생활을 계속할 계획이다. 같이 사는 딸이 2년 전 취직을 했지만 그렇다고 이씨가 곧바로 은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아 놓은 돈도 별로 없는 데다 딸의 결혼 자금 마련에도 도움을 주고 싶어서다. 여기에 딸이 결혼할 때 현직에 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솔직히 있다. 이씨는 "젊을 때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은퇴를 대비한 자금을 모으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며 "자식들 결혼시키고 여유로운 은퇴 생활을 즐기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운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은퇴는 누구나 경험해야 하는 인생의 통과의례 중 하나다. 하지만 은퇴에 대한 대비에는 인색한 것이 현실이다. 저축과 같은 은퇴 대비를 제때 하지 못하다 보니 은퇴 시기를 늦춰 이씨처럼 지각 은퇴를 하는 일이 많아지는가 하면 조기 은퇴 대비를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일도 빚어지고 있다.
경제매체 CNBC는 미국 직장인들 중 상당수가 은퇴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고 있어 무대책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CNBC가 지난 6월 미국 내 직장인 6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직장인의 40%가 은퇴 준비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젊은층일수록 은퇴 준비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을 놓고 60~78세 베이비부머세대들의 37%가 후회한다고 답한 반면 20대 초반 Z세대의 경우 5%만이 후회한다고 답했다.
재정 전문가들은 여유로운 은퇴 후 삶을 위해선 조기 준비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입을 모은다. 은퇴 대비책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된 재정으로 저축이 권장되고 있다.
문제는 양육과 가정을 꾸리느라 저축과 같은 은퇴 대비에 나서지 못한다는 데 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은퇴 시기를 늦추고 취업 전선에 나서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HR컨설팅업체 라이브커리어에 따르면 직장인의 82%가 재정 부담으로 은퇴 시기를 늦추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또 92%는 원래 계획했던 은퇴 시기 이후에도 일을 계속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은퇴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결국 돈이다. 퓨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절반 가량이 직장을 그만두면 생계에 위협을 받을 것으로 염려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은퇴자의 70%가 미리 저축을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은퇴해야 할 시니어들의 경제활동 지표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65~74세 연령군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 비해 각 주별로 5~10%씩 증가했다. 연방인구통계국과 노동부는 65세 이상 노동 인구가 2020년 1060만명에서 2024년 1300만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같은 사정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7월 한국 통계청에 따르면 55~79세 고령층의 70%가 앞으로 더 일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 중 절반이 생활비를 부담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고령층 취업자는 934만6000명으로 전년에 비해 31만6000명이 늘었다.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