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법 등에 '공공안녕' 의무…재난안전법엔 '압사' 명시 안돼

(서울=연합뉴스) 안정훈 이율립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에 부실하게 대응한 혐의로 기소된 이임재(54)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 등 경찰 관계자들이 30일 유죄를 선고받았다. 반면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구청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같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등에 대해 참사 당시 이태원을 관할한 경찰과 구청 책임자들에 대한 유·무죄 판단이 갈린 셈이다.

재판부는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경찰법)이나 재난안전법 등 선행법령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기관의 주의 의무를 규정했는지로 유·무죄를 판단했다.

우선 경찰의 경우 경찰법과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에 따라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이를 근거로 볼 때 핼러윈 데이를 맞아 이태원의 인파 집중을 예측하는 언론보도와 내부 정보보고 등을 토대로 안전사고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음을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대처를 소홀히 했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이외에도 이 전 서장은 참사 당일 오후 6시43분경 사고 장소에서 112신고가 지속해 접수됐음에도 무전을 제대로 청취하지 않았거나 소홀히 대처했기 때문에 법령에 명시된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됐다.

재판부는 "피고인들로서는 안전사고로부터 피해자들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사고 상황에 대비하여 서로 유기적으로 협조하는 관계"라고 봤다.

그러면서 "피고인들 모두 과실범의 공동정범으로서의 책임을 지고 피고인들의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과 피해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 역시 충분히 인정된다"고 밝혔다.

반면 재판부는 용산구청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재난안전법에 '다중운집으로 인한 압사사고'가 재난의 유형으로 분류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무죄로 판단했다.

또한 행정안전부와 서울시의 2022년 안전계획 수립 지침에도 압사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은 점,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해서 구청이 구체적으로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없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구청 관계자들이 핼러윈 데이에 대비해 안전관리계획을 정비하거나 보완해야 할 직접적인 업무상 주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자치구를 관할하는 행정기관에서 사전에 특정 장소로의 대규모 인파 유입을 통제·차단하거나 밀집한 군중을 분산·해산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수권규정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10·29 이태원 참사 TF 소속 최종연 변호사는 이날 판결에 대해 "경찰은 경찰관 직무집행법에서의 혼잡 경비 의무, 경찰법에서 말한 공공안전에 대한 직무를 인정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구체적 주의 의무 대상에 포함된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짚었다.

최 변호사는 "용산구청의 경우는 근거 법령인 재난안전법에 대해서 재판부의 판단은 (구청에)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주의의무만 있고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주의의무까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구체적인 주의 의무가 있으려면 의무에 대처할 권한도 있어야 하는데 검찰이 권한 유무를 명백히 입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재난안전법에는 지자체가 사회 재난에 대해서 예방하고 대응할 주의 의무가 포괄적으로 있다고 명백하게 규정됐다"며 "구청이 재난안전법상 있는 응급조치 의무, 대피 명령 권한을 행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법원이 구체적으로 판단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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