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이민·환경 '우향우' 정책 맞서 소송 채비도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미국 차기 대선이 눈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민주당이 집권 중인 주(州)들이 낙태약을 비축하거나 동성결혼 관련 입법을 추진하는 등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누가 승리할지 예측할 수 없는 초박빙 양상이 계속되자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선제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7일(현지시간) "서해안에서 동부까지 민주당 주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월 승리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만에 하나 '트럼프 2기'가 현실화한다면 타깃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낙태, 이민, 환경 등 분야에서 연방정부가 간섭할 여지를 최소화하는 '트럼프 프루핑'(Trump-proofing·트럼프 대비)을 진행 중이란 것이다.

예컨대 워싱턴주와 매사추세츠주 등은 먹는 낙태약인 미페프리스톤(mifepristone)을 주 정부 차원에서 대량으로 보관하고 있다.

이 주들은 지난해 낙태 반대단체 등을 중심으로 소송을 통해 미페프리스톤 사용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자 '여성의 생식권 보장'을 이유로 약품 비축 결정을 내린 곳들이다.

연방대법원이 올해 6월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관련 소송은 일단락됐지만, 워싱턴주와 매사추세츠주는 적어도 대선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각각 3만회분과 1만5천회분에 이르는 미페프리스톤을 계속 가지고 있을 계획이다.

미국 진보 진영의 아성으로 1기 집권 당시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과 심한 갈등을 빚었던 캘리포니아주는 세계 최대 자동차 제조업체 중 하나인 스텔란티스와 올해 초 환경 관련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해당 협약의 골자는 사법적, 혹은 연방정부의 조처로 인해 캘리포니아주가 마련한 환경 관련 기준이 강제력을 상실하더라도 스텔란티스는 이를 계속 준수한다는 것이었다.

트럼프 선거본부는 이번 대선에서 승리해 재집권할 경우 미국 주 정부들로부터 승용차와 트럭 등의 배출가스 허용기준을 정할 권한을 박탈하겠다고 밝혔는데, 이에 정면으로 맞서는 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민주당 소속인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6일에는 체외인공수정(IVF·시험관) 시술에 대한 보험 적용 보장을 명문화하는 법안에 서명하면서, 공화당이 IVF에 반대한다는 걸 이 법이 시급히 처리돼야 할 이유로 언급하기도 했다.

공화당 내에선 다수의 난자를 채취해 인공수정한 배아 중 일부만이 자궁에 이식되고 나머지는 폐기된다는 이유로 IVF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은 실정이다.

그런 까닭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8월 정부나 보험사가 IVF 비용을 지원하도록 하겠다고 공약한 뒤에도 여성계에선 공화당 집권 시 IVF가 사실상 금지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왔다.

이밖에 콜로라도주와 하와이 등지에선 동성결혼 보호를 위한 주 헌법 개정안이 내달 5일 총·대선과 동시에 주민투표에 부쳐진다. 민주당 주 정부들은 트럼프 집권 시 쏟아져 나올 환경·이민·민권 관련 '우향우' 정책들에 대항해 소송을 제기하기 위한 법적 검토도 진행 중이다.

로버트 리바스 캘리포니아주 의회 하원의장은 이러한 움직임들에 대해 "트럼프가 어떻게든 재선된다면 우리는 바로 첫날부터 이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hwangc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