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최윤정 기자 = 세계적 반도체 장비업체인 ASML의 실적 충격으로 미국과 아시아의 대형 반도체 기업 시가총액이 4천200억달러(약 572조원)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블룸버그통신은 16일 네덜란드 ASML이 시장 기대치에 크게 못 미치는 실적 전망치를 공개하면서 세계 반도체 투자심리에 찬물을 끼얹었다며 이처럼 추산했다.

ASML은 2025년 매출이 300억∼350억 유로(327억∼381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날 밝혔다.

이는 ASML이 예전에 내놨던 예상치는 물론 시장 전망치(358억 유로)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시티그룹의 아티프 말릭 애널리스트는 "ASML 실적 전망치 하향 조정 정도가 놀랍다"고 말했다.

ASML은 실적 전망 공개 이후 주가가 16% 넘게 폭락했다. 이는 1998년 이후 최대 폭 하락이다.

ASML 실적 전망치 하향으로 반도체 수요가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가 퍼지며 반도체 관련 종목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5.28% 하락 마감했다. 그 여파로 이날 일본의 도쿄일렉트론은 최대 10% 하락했고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도 한 때 하락률이 3.3%에 달했다.

한편, 로이터통신은 ASML 실적 전망치 하향 조정에 관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에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ASML 장비를 비축해둔 것이 반영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 이 업체들이 장비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게 되면서 생산량이 늘어나게 됐다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 컨설팅 업체인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스트래티지스(IBS)의 최고경영자(CEO) 헨델 존스는 ASML 주력 장비가 사용되는 단계 수가 거의 3분의 1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첨단 에칭 기술을 이용해서 ASML의 대표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사용하는 횟수를 5∼6회에서 1∼회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성공한다면 EUV 노광장비를 이용한 생산능력이 상당히 커지게 된다고 그는 덧붙였다.

시장조사업체 테크인사이츠의 댄 허치슨 부사장은 "인텔, TSMC, 삼성전자 등이 생산능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고 주문을 거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ASML은 이들 업체에 첨단 반도체 장비를 거의 독점 공급하고 있다.

허치슨 부사장은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공장 가동률이 90%대 중반에 이르면 장비를 구매하는 경향이 있는데 올해 가동률은 약 81%"라고 말했다.

ASML은 인공지능(AI) 관련 반도체 붐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시장 다른 부문의 약세는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중앙처리장치(CPU) 등 로직 칩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주문을 미루고 메모리칩 생산업체들은 추가 생산 능력을 제한적인 수준에서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존스는 "AI칩 수요 급증이라는 전망에는 변화가 없다"며 "일시적 문제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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