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린폴리시 "우크라 전황에 영향 줄 가능성…한반도 군사균형 바꿀 수도"

"韓, 우크라에 살상무기·통역관 지원 검토"…남북한 '대리전' 번지나

NYT "北, 베트남전 파병으로 美서 군현대화·경제성장 얻어낸 韓 모방"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웠던 북한군의 우크라이나전 파병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이번 일이 몰고올 파장을 놓고도 다양한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는 23일(현지시간)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왜 중요한가' 제하의 기사에서 파병된 북한 병력의 전투능력 등에 의문이 존재하긴 하지만, 북한군의 파병은 2년 반 넘게 우크라전의 수렁에 빠져 있는 러시아를 구하는 동시에 한반도의 군사 균형도 바꿔 놓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FP는 1만명 안팎의 북한군이 러시아 편에서 싸우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장에 배치된 것은 첨예한 긴장 고조이자 수 세대 만에 벌어진 유럽 최대 전쟁의 '국제화'를 의미한다면서 이번 일이 유럽과 동북아시아 긴장 지역에 잠재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FP는 우선 한국 정보 당국의 설명을 인용, 징집병이나 죄수들로 이뤄진 러시아 병력과 달리 파병된 북한 병력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잘 준비된 최정예 특수부대 소속인 것에 주목했다.

이들이 비록 처음 경험하는 현대전과 러시아어로 이뤄지는 지휘 체계 때문에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시행착오를 겪을 수는 있겠지만 특히 침투 작전에서 뛰어난 역량을 갖추고 있는 만큼 단순한 '총알받이'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의 한 국방 전문가는 "(파병된) 이들 부대는 공격과 방어 작전 양면에서 (우크라이나에)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FP는 러시아가 이르면 내달 파병된 북한군을 우크라이나에 점령당한 러시아 남서부 쿠르스크 전선에 배치해 우크라이나군을 몰아내는 데 활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은 북한군 병력 일부가 빠르면 지난 23일부터 쿠르스크 전선에 처음으로 배치될 것이라고 최근 주장한 바 있다.

FP는 러시아가 북한군 파병으로 쿠르스크 지역에 상대적으로 뛰어난 역량을 갖춘 새로운 부대를 수혈함으로써 정체된 쿠르스크 탈환 작전에 돌파구를 마련하고,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스크를 넘어 자포리자와 드니프로까지 깊숙이 진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 외교정책연구소(FPRI)의 롭 리 수석연구원은 "싸울 의지로 무장된 1만명가량의 병력은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며 북한군을 상대로 우크라이나군이 대응하면 남부 전선이 약화할 수 밖에 없으며, 이런 면에서 소수의 북한군 배치는 러시아군에 '전력 승수'(force multiplier) 효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이 2년 반이 넘는 우크라이나전 기간 50만명의 전력을 투입하고도 이루지 못한 전력 강화 효과를 상대적으로 적은 1만명 정도의 북한군 가세로 이룰 수 있음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FP는 아울러 북한이 이미 수백만 발의 포탄을 러시아에 제공하는 등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해 왔지만 실제 병력을 보내는 것은 북러 관계의 속성에 있어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라면서,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은 경제적, 군사적 측면 등에서 러시아의 추가 지원을 끌어낼 수 있고, 그동안 절실했던 현대전에 대한 직접 전투 경험을 얻어 한반도에서 더 큰 '장난'(mischief)을 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레이철 민영 리 선임연구원은 "무기를 보내는 것과 자국민을 직접 전장에 파견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투자이자 약속"이라며 "이는 더 큰 투자이고, 따라서 더 큰 대가가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리 선임연구원은 그러면서 내달 대선에서 선출될 새 미국 대통령이 조건과 무관하게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려 할 가능성을 고려하면 "김정은(국무위원장)이 착수금 없이 병력을 보냈다고 믿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한국의 국방 전문가는 북한이 이번 파병을 통해 특히 공격용, 방어용 드론 사용 경험을 얻을 수 있는 점을 단기적인 이점으로 지목했다.

리 선임 연구원은 김 위원장이 러시아와의 새 협력과 그동안 러시아에 지원한 수백만 발의 포탄에 대담해질 수 있다며, 이 경우 그는 한반도 주변에서 훨씬 더 호전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그는 이어 한반도에 긴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중국의 개입에 대해 걱정하는 것 대신에 "이제 러시아의 존재감이 더 커질 것에 대해 생각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FP는 또한 한국 정부가 러시아 편에 파병된 북한 병력의 철수를 요구하면서 그동안의 입장과 달리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등 북한군 파병의 심각성을 우려하며, 대응에 부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북한 병사가 포로로 잡힐 경우 우크라이나 심문을 도울 수 있도록 통역관 파견까지 고려하고 있다면서, 이 경우 쿠르스크 전선은 남북한의 '대리전'으로 변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전투로 단련된 북한군 간부와 병력이 귀환할 경우 러시아의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한 절박한 움직임에서 시작된 이번 파병은 "단기적, 장기적으로 한반도의 군사 균형에 변화를 초래하는" 훨씬 더 큰 문제로 귀결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북한으로의 첨단 무기 기술 이전을 저지하기 위해 북러의 가장 중요한 협력국인 중국과의 물밑 외교를 강화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센터의 알렉산데르 가부에프 소장은 이와 관련, "중국은 북러 군사 관계의 심화가 흡족하지 않다는 신호를 계속 발신해 왔다"며 "한국은 중국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한반도 문제를 놓고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주장을 중국에 펼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북한이 러시아 파병을 통해 남한이 수십년 전 베트남전 파병을 통해 취했던 경로를 모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고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한국은 미국이 고전한 베트남전에 외국군으로는 최대 규모인 약 32만명의 병력을 파견함으로써 미국과의 결속을 다진 바 있다.

미국은 한국군의 베트남전 대규모 파병 대가로 노후한 한국군의 현대화를 돕는 한편 값싼 차관을 제공해 경제 성장을 지원했다고 NYT는 짚었다.

ykhyun1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