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이어 해리스도 좌절…'여성혐오·성폭행 이력' 트럼프 당선에 상실감
트럼프 향한 광범위한 지지에 체념도…유엔 193개 회원국 중 여성 수장은 13개국
"248년간 미국은 남성이 이끌었고, 최소 4년은 더 지속될 것이다."
미국 대통령에 도전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좌절로 미국은 '여성 대통령'의 탄생 문턱을 또 다시 넘지 못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과거 여성혐오 발언을 쏟아내고 성폭행 이력까지 있다는 점에서 미국 일부 여성들은 더욱 큰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대선 후 여성들이 느낀 '또 다른 상실의 아픔'을 느끼고 있다며 6일(현지시간) 이들의 목소리를 실었다.
미국에서 여성 투표권이 전국적으로 인정된 것은 105년이 넘었다. 선거 과정에서 인종이나 피부색에 따른 차별이 금지된 지도 59년이 지났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백악관으로의 여성 입성에 재차 제동을 걸었다.
한국을 비롯해 영국, 독일, 이스라엘, 인도, 캐나다, 멕시코 등 많은 나라가 여성을 지도자로 택했지만, 미국은 아직 여성을 지도자로 받아들인 역사가 없다.
NYT는 미국 여성 대선 후보들은 '가장 높고 단단한 유리천장'을 향한 힘겨운 오르막길에 계속해서 도전했고, 미국은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고 믿었지만 틀렸다는 게 하나씩 드러났다고 진단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무당파 유권자 니콜 세일러는 "솔직히 나는 무섭다"고 토로했다.
세일러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고 여성 혐오적인 사람에게 국민의 51%가 투표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무섭다"며 "국민의 절반이 그게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게 무섭다"고 했다.
더욱이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유권자 절반이 넘는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는 점에서 여성계에선 일부 체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을 누르고 승리한 2016년엔 그 분노와 충격에 분홍 모자를 쓴 시위가 일기도 했다.
당시에는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전국 지지율이 더 높았으나, 이번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거인단뿐만 아니라 전체 유권자 투표에서도 51%가 넘는 지지를 받았다. 2016년에 분노와 충격이 컸다면, 이번엔 여성들이 느끼는 감정은 슬픔과 고통에 더 가깝다고 NYT는 진단했다.
디트로이트에서 환경운동을 하는 애비 클라크는 "앞을 내다볼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우리가 살 세상이 어떨지 상상할 수 없다. 그저 어렵고 힘들 거란 것만 알겠다"고 했다.
선거 과정에서 트럼프 당선인은 남성 유권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남성 우월적이고 여성 혐오적인 언어를 동원하기도 했고, 때론 해리스 부통령의 지능을 모욕하고 그가 나라를 이끌 체력이 부족하다고 공격했다.
선거운동 마지막 날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유세에선 한 참가자가 해리스 부통령이 매춘부였다는 식의 저속한 농담을 던지자, 트럼프 당선인은 웃음을 터뜨리며 "이곳은 대단하다"고 호응했다.
다만 이번 대선의 성별 대립 구도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을 지지한 여성 일부는 해리스 부통령의 패배는 성별과의 거의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네브래스카주 공화당 위원 판천 블라이스는 "미국은 올바른 여성 대통령을 맞이할 준비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카멀라 부통령은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여성 지도자를 배출하지 못한 나라는 미국만이 아니다. 숫자로 볼 때 여전히 남성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조사기관 퓨리서치에 따르면 유엔 회원국 193개국 중 여성이 이끄는 나라는 13개국에 불과하다.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noma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