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여제’가 제 자리로 돌아왔다. 8개월만에 필드에 복귀한 박인비(29)가 정상을 되찾는데에는 겨우 2경기만으로 충분했다. 

박인비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HSBC 위민스 챔피언스(총상금 150만 달러)에서 우승하면서 화려한 부활쇼를 펼쳤다. 박인비는 5일 싱가포르 센토사 골프장 탄종 코스(파72)에서 열린 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신들린 퍼팅을 앞세워 버디 9개와 보기 1개를 묶어 무려 8타를 줄이며 최종합계 19언더파 269타로 2위 아리야 주타누간(태국)을 1타 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우승상금은 22만5000달러(약 2억6000만원). 너무나도 화려한 ‘골프여제’의 귀환이었다. 시즌 첫 우승이자 통산 18승이다. 2015년에 이어 2년 만에 이 대회를 다시 제패했고 LPGA 투어에서는 2015년 11월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우승 이후 약 16개월 만의 우승이다. 이날 8언더파 64타는 대회 코스레코드였고 박인비의 우승으로 한국은 장하나(호주여자오픈) 양희영(혼다 LPGA 타일랜드)에 이어 3주 연속으로 LPGA 투어 우승자를 배출했다. 

3라운드까지 선두 미셸 위(미국)에 3타 뒤진 공동 5위였던 박인비는 4라운드에서 스스로 “공이 그린 어디에 올라가도 다 들어갈 것만 같았다”고 말했듯이 신들린 퍼팅을 앞세워 추격에 나섰다. 첫 4개홀을 파세이브로 샷을 조율한 박인비는 미셀 위가 3,4번홀 연속 버디로 기세를 올렸지만 ‘침묵의 암살자’라는 닉네임의 주인공답게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리고 5번홀(파5)에서 첫 버디를 낚으며 반격에 나섰고 6번홀(파4)에서도 버디를 추가해 단숨에 2위권으로 치고 올라왔다.

‘골프여제’의 진면모는 8번홀(파5)부터 시작됐다. 무려 5홀 연속 버디를 잡아내며 상대를 기죽게 만들었다. 반환점을 돌았을때 주타누간 박성현 브룩 헨더슨(캐나다) 등과 함께 공동 선두를 형성한 박인비는 10,11번홀 버디로 단독선두로 나섰다. 12번홀(파4)에서는 5개홀 연속버디에 성공해 따라붙던 주타누간을 3타차로 밀어내며 우승을 예감했다. 이후 주타누간이 13번홀(파5)과 14번홀(파4) 연속 버디로 다시 추격에 나섰지만 박인비는 14번홀에서 까다로운 4m 내리막 버디 퍼팅을 홀에 떨구며 2타차를 유지했다. 박인비는 17번홀(파3)에서 사실상 승부의 쐐기를 박았다. 먼저 티샷을 한 주타누간이 홀 1m에 붙이며 시위했지만 박인비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박인비의 공은 홀에서 10m 거리, 자칫 1타 차로 좁혀질 위기였다. 그러나 박인비의 퍼터를 떠난 볼은 거짓말처럼 홀컵으로 빨려들어갔다. 주타누간은 망연자실했고 박인비는 마지막 18번홀(파4)에서 보기를 했지만 우승컵을 들어올리는데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우승이 확정된 순간 박인비는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귀환의 기쁨을 만끽했다.

우승 후 박인비는 “오늘 퍼팅감이 좋았던 게 우승 원동력이었다. 어제는 퍼트가 실망스러웠는데 보상 받은 기분”이라면서 “지난 주 대회가 끝난 뒤엔 경기 감각을 찾는데 두 달 정도는 걸릴 것 같았다. 그런데 부상 복귀 후 2주 만에 우승을 해 나도 놀랐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준우승한 주타누간은 “박인비는 정말 놀랍다. 최고의 선수고 그녀와 함께 플레이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많은 것을 배웠다”며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 

박인비의 이번 우승은 무엇보다 부상의 악몽을 털어내고 다시 정상에 올라섰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그는 지난해 손가락과 허리 부상에 시달려 지난해 6월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 컷 탈락 이후 LPGA 투어에 나서지 못했다. 필드 복귀 여부도 불투명했고 은퇴설까지 떠돌았다. 8월 리우 올림픽에서 기적같은 금메달 투혼을 보여줬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제 자리로 돌아올 줄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 감격스러웠다.지난해 말부터 미국에 훈련캠프를 차리고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하게 샷을 단련한 결과였다. 무엇보다 전성기 시절 모습 그대로여서 반가웠다. 지금까지의 쌓아온 전설 위에 다시 새로운 전설이 시작됨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한편 LPGA 투어 공식 데뷔전을 치른 박성현은 첫 무대에서 16언더파로 단독 3위(16언더파 272타)를 차지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한국은 둘 외에도 장하나가 공동 4위(14언더파 274타) 유소연이 공동 7위(13언더파 275타) 이미림과 최운정이 공동 9위(12언더파 276타)에 오르는 등 모두 6명이 톱10을 꿰차 올 시즌 대활약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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