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의 본고장에 낸 그룹 방탄소년단(BTS) 균열이 이제 ‘철옹성’ 그래미로 향한다.

지난해 한국 대중음악 가수 최초로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 후보에 오른 방탄소년단이 올해도 후보에 올랐다. ‘그래미 어워즈’ 주관사인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는 24일(한국시간) 방탄소년단 ‘버터(Butter)’를 ‘제64회 그래미 어워즈’의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Best Pop Duo/Group Performance)’ 부문 후보로 발표했다.

방탄소년단의 ‘그래미 어워즈’ 후보 지명은 이번이 두 번째다. 방탄소년단은 지난 ‘제63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다이너마이트’로 한국 가수 최초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후보에 올랐다. 당시 아쉽게 고배를 마셨지만, 백인 가수 위주로 돌아가는 그래미 시상식의 거대한 장벽에 균열을 냈다는 평을 얻었다.

다만 당초 기대를 모았던 4대 본상인 ‘제너럴 필즈(General Fields)’ 후보에는 들지 못했다.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신인상’ 등이 4대 본상인 ‘제너럴 필즈’로 불린다. 이번에는 아바, 존 바티스트, 토니 베넷과 레이디 가가, 저스틴 비버, 도자 캣, 브랜디 칼라일, 빌리 아일리시, 릴 나스 엑스,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노미네이트 됐다.

방탄소년단은 후보 발표에 앞서 올해 히트곡 ‘버터’가 빌보드 ‘핫 100’ 10주 1위에 오르고,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erican Music Awards)’에서 ‘올해의 아티스트’를 수상하면서 ‘올해의 레코드’ 후보에는 오르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외신 등에서 제기됐으나 역시나 ‘그래미의 벽’은 높았다.

그간 보수적, 배타적 시상식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던 ‘그래미 어워즈’는 ‘올해의 레코드’ 부문에 방탄소년단의 이름이 오르지 못한 것을 두고 또 한번 비난을 사고 있다. AP통신은 “‘버터’가 퇴짜를 맞았다”고 보도하며 “올 여름 메가 히트곡이었지만, 그래미는 단 1개 부문 후보에만 한국 그룹 방탄소년단을 올려놓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강태규 대중음악 평론가는 “올해 외형적 성적으로만 보더라도 방탄소년단이 본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 그래미는 방탄소년단의 손을 놓았지만, 반대로 전세계 음악 팬들은 방탄소년단을 더 깊숙이 가슴에 품게 됐다”고 말했다.

비록 ‘올해의 레코드’ 부문 노미네이트에는 실패했지만 가장 권위 있고 콧대 높기로 유명한 그래미에서 2년 연속 후보로 이름을 올린 것은 자체로도 의미있는 ‘균열의 시작’이라는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박희아 대중음악 평론가는 “방탄소년단이 그래미 후보에 올랐다는 건 한 팀의 성과로서도 엄청난 거지만, 아시안 아티스트, 심지어 아이돌 밴드가 이뤄낸 것이란 점에서 그래미의 장벽을 한 단계가 아닌 서너 단계를 뛰어넘은 성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는 수상 가능성에 대한 기대도 높다. 만일 이번 그래미에서 트로피를 거머쥐게 된다면 방탄소년단은 미국 3대 대중음악상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일단 분위기는 좋다. ‘그래미 어워즈’ 전초전으로 통하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에서 지난 22일 방탄소년단이 대상 격인 ‘아티스트 오브 더 이어(Artist of the Year)’를 비롯해 3관왕을 받은 쾌거를 이루며 ‘그래미 어워즈’ 후보 지명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현재 방탄소년단 글로벌 인기와 위상도 하늘을 찌르고 있다. 앨범 판매량과 빌보드 차트 순위 등 다방면에서 승승장구 중이라는 점도 그래미 수상 가능성을 예견케 하는 요소다. 지난 5월 발표한 ‘버터’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인 ‘핫 100’에서 총 10주에 걸쳐 1위를 차지했고, ‘Permission to Dance(퍼미션 투 댄스)’와 콜드플레이와 협업 곡 ‘My Universe(마이 유니버스)’로도 정상에 오르며 명실상부 ‘흥행 보증 수표’가 됐다.

더욱이 그간 ‘보수적’이란 평가를 받아온 그래미가 올해 변화를 꾀한 점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그래미 어워즈’부터 공정성 논란 주축이었던 심사위원회가 사라지고 1만1000여 명에 달하는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로 후보를 선정하는 방식이 새롭게 도입됐다. 방탄소년단의 전세계적인 팬덤의 인기와 영향력을 폭넓게 인정받을 길이 열린 셈이다.

박희아 평론가는 “수상 가능성을 높게 보지만, 이번에도 불발된다면 서구권 음악시장에 대한 여전한 프라이드와 음악 소비자들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선정기준을 고수하겠다는 의미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K팝을 넘어 팝의 본고장인 미국 본토에서 확고한 영향력과 흥행 파워를 인정받아온 방탄소년단이 여성 아티스트, 유색 인종 아티스트들에 대한 홀대 논란이 매년 반복되며 ‘화이트 그래미’라는 오명을 안은 그래미의 견고한 ‘철옹성’을 뚫을지 주목된다.

한편 제64회 그래미 시상식은 내년 1월 31일, 한국 시각으로는 2월 1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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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