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에서 배우 김혜수는 상징적인 존재가 됐다. 그런 그에게도 ‘소년심판’이 던진 화두는 묵직하고 날카로웠고, 그랬기에 김혜수는 “한순간도 심은석을 놓을 수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깊은 책임감을 느꼈다.

지난달 25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소년심판’은 소년범을 혐오하는 판사 심은석이 한 지방법원 소년부에 부임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소년범죄와 사건을 담당하는 판사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김혜수는 성인이 아닌 소년이라도 죄를 지었으면 합당한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신념을 가진 판사 심은석을 연기했다.

37년차 배우 김혜수의 말투는 차분하고 정적이었지만, 그 속에서 묘한 떨림과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한순간도 허투루 연기하지 않았다는 그는 “이번 작품은 주제가 갖는 무게감이 컸다. 어떤 작품보다 책임감이 느껴진게 사실이다. 대사에서 느껴지는 무게들이나 메시지가 상당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실제 법관들 만나고 소년법정을 참관하며 더 크게 느꼈다. 극중 판사들이 하는 얘기는 실제 얘기다. 작가님이 이 작품을 얼마나 오랜 취재 끝에 책임감과 균형감을 가지고 예민하게 신경 쓰면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접근했는지 느꼈다”고 말했다.

‘소년심판’은 살인, 집단 성폭행, 성매매, 절도 등의 소년 범죄를 다룬다. 그간 뉴스로도 자주 접했던 이같은 사건사고에 흔한 청소년의 일탈로 치부하기 쉽지만, ‘소년심판’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단순히 피해자와 가해자로 구분 짓지 않고 범죄의 뿌리에 있는 어른들에게서 방치된 청소년들과 가정폭력, 사회 시스템의 취약점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김혜수 역시 이 점이 가슴 속 깊이 와닿았고 출연을 결정했다.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고 느꼈다는 김혜수는 “극적인 재미를 위해서 소년범죄를 소재로 삼은게 아니라 다각적인 이해를 돕고 다같이 한 번쯤 고민해보고자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지가 많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래서 김혜수는 작품의 메시지에 오롯이 집중했고, 심은석의 신념과 태도에 최선과 진심을 다했다. “심은석으로서 단지 강한 캐릭터가 아니라 법관으로서 그리고 어른으로서 갖고 있는 신념과 그리고 그 신념을 통해 소년범이나 피해자 가족 그리고 가해자 가족을 대하는 태도까지 모두 중요했다.”

김혜수가 연기한 심은석 판사는 웃음기 없이 시종일관 냉정함을 유지하며 소년범과 소년범죄에 냉철하게 접근하는 인물이다. 평소 웃음과 눈물이 많기로 유명한 김혜수는 이런 감정유지가 꽤나 힘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잠자기 직전까지도 심은석이 놓아지지가 않았다. 힘든 순간이 있긴 했다. 심은석으로서 냉정한 태도를 외적으로 유지하는게 쉽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사례를 볼 때) 너무 가슴이 아팠고, 특히 염혜란 배우와 연기할 때 눈물 정말 많이 참았다. 배우로서 대사를 통해 드러내는 감정이 가슴에 툭툭 와닿더라. 너무 좋은 경험이라 생각했다.”
신예들의 열연도 눈부셨다. 특히 백성우 역의 이연은 성별마저 바꾼 연기 열정이 공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혜수 역시 이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인터뷰 내내 차분하던 김혜수는 이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반짝였다. 그는 “캐스팅에 놀랐다. 감독님이 엄청난 시간을 할애해 오디션을 보셨다. 매체에 많이 노출되지 않은 배우들임에도 실력이 출중했다. 마치 진짜 재판인 것 같은 느낌 최대한 살리려 대중에게 낯선 얼굴들의 배우들을 캐스팅했다고 하시더라”라며 “대본을 보면서 백성우를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그릴 수 없었는데, 이연을 보자마자 백성우가 그냥 거기 서 있는 느낌이더라. 순간 심장이 막 쿵쾅쿵쾅거렸다. 그런 후배를 소개할 수 있어서 고무적이다”라고 말했다.

김혜수 역시 배우이기 전 ‘어른’으로서 이번 작품을 통해 깨달은 점이 많다. 그는 “제 또래 친구들은 학부모인 경우가 많고 실제 우리 작품에서 다루는 가해자, 피해자 부모의 나이대가 많다. 그러다보니 ‘소년심판’을 보고 친구들이 내 아이가 이럴 수 있다고 생각해 무섭기도 하고 그래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는 얘기들을 하더라”라며 “소년범죄에 있어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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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 중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