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CODA)’. 청각 장애인 부모를 둔 건청인을 뜻하는 말로, ‘Children Of Deaf Adult’의 약자이다.

28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엔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 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은 바로 이 코다와 그 가족의 삶을 그린 영화 ‘코다’였다. 당초 시상식의 대미를 장식할 작품상으로는 넷플릭스 영화 ‘파워 오브 도그’가 유력했으나 애플TV의 ‘코다’가 아카데미 시상식 막바지 맹추격하며 끝내 오스카의 승자가 됐다.

앞서, ‘코다’의 감독 션 헤이더는 각색상을 수상하며 수어 통역사와 수상소감을 함께 했다. 그는 “이 여정을 시작하게 해주신 제작사에 감사드린다. 또한 멋진 파트너가 되어준 애플에도 감사하다. 이 영화를 쓰고 제작하는 것은 예술인으로서의 제 삶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함께 해준 모든 청각장애인, 코다 커뮤니티에서 저를 가르쳐준 모든 사람들, 그 멋진 언어인 수어로 연기를 해준 배우들 너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장애인, 퀴어, 유색인종, 여성까지 소수자 모두를 아우른 시상식이었다. 주요부문에 장애인 배우와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배우의 수상이 이어졌고, 사상 세 번째 여성 감독상 수상자가 나왔다. 또한 시상식 사회자와 오프닝 무대도 모두 유색인종 여성이 도맡았다.

가장 먼저 세리나, 비너스 윌리엄스가 등장해 이날 시상식의 오프닝을 열었다.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인 두 자매는 무대 위로 나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가수 비욘세의 오프닝 축하무대를 소개했다

이어 이날의 시상식 호스트(사회자)인 미국 방송인 레지나 홀, 에이미 슈머, 완다 사이키스이 등장했다. 이들은 “남성 진행자 한명의 출연료보다 싸서 여자 진행자 세명이 진행하게 됐다”며 위트있게 남녀 배우간의 임금 격차문제를 꼬집었다. 또한 완다 사이키스는 “흑인 여성을 대표해서 영광”이라고도 했다.

또한 이들은 아카데미의 새로운 개혁의 일환으로 시상식 생중계 시간을 줄이기 위해 주요부문이 아닌 8개 부문의 상을 생중계 1시간에 사전시상 한 것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이들은 “모두가 같은 노조 소속인데 말이다”라고 비판했다.
남녀주연상은 ‘킹 리차드’의 윌 스미스와 ‘타미 페이의 눈’의 제시카 차스테인이 오스카 삼수 끝에 나란히 수상에 성공했다. 윌 스미스는 ‘킹 리처드’에서 두 딸 비너스와 세레나를 전설적인 테니스 챔피언으로 키워낸 아버지 리처드 윌리엄스로 분해 열연했다. 제시카 차스테인은 ‘타미 페이의 눈’에서 전설적 TV프로그램을 이끌었던 주인공 타미 페이 베이커의 흥망성쇠를 그렸다.

윌 스미스는 이번 수상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94년 역사상 다섯 번째 흑인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됐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리차드는 가족의 극진한 보호자였다”며 “너무나 감동스럽다. 제가 이 역을 하게 된 게 소명이라 느껴진다”고 말했다.

제시카 차스테인은 유독 수상자 예측이 어려웠던 여우주연상 부문에서 니콜 키드먼, 올리비아 콜먼, 크리스틴 스튜어트 등을 제치고 승자가 됐다.

차스테인은 수상소감으로 “요즘 우리는 참 힘든 시기를 지나면서 트라우마와 고립을 경험한다”며 “세상의 많은 사람이 지금 희망을 잃고 외롭다고 느낄 것이다. 자살이 가장 높은 사망원인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차별적인 법안이 미국에 만연해지고 있고 사람들을 갈라놓고 있다”며 “폭력, 증오 범죄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이 전 세계에서 다치고 있다. 이런 시기를 지나며 타미가 어떻게 사랑을 실천했는지 생각한다, 타미의 연민을 원칙으로 삼아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조연상 부문은 수상자의 ‘소수자성’이 돋보였다. 영화 ‘코다’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트로이 코처는 농인 남자 배우로서는 사상 첫 아카데미 연기상 수상자가 됐다. 첫 번째 아카데미 농인 수상자는 ‘코다’에 함께 출연한 배우 말리 매틀린이다, 그는 1987년 열린 제5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다.

트로이 코처는 이날 수상소감으로 “아카데미 모든 분들이 저희(농인)의 연기를 인정해 주심에 감사드린다. ‘코다’라는 영화가 전세계적으로 상영된 것이 놀랍다. 지금 많은 농인 연기자들이 있는데 농인인 동료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이 상은 모든 농인분들 그리고 모든 코다팀, 그리고 모든 장애인 분들께 바친다”라고 덧붙였다.

여우조연상은 영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아리아나 드보스가 받았다. 드보스는 이로써 퀴어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밝힌 배우로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연기상 수상자가 되었다.

드보스는 “미국에서의 아메리카 드림이 정말 실현돼서 가슴이 벅차다”며 “뒷자석에만 타 있는 작은 여자이자 그리고 성소수자인 저에게 이런 꿈을 꾸게 해줬다. 그런 마음으로 이 자리에서 저는 자기의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던 모든 사람들을 축하하고 싶다”라며 소감을 마무리했다.

한국인 배우들의 참석도 화제였다. 우선, 윤여정이 남우조연상 시상을 하러 나왔다. 이는 윤여정이 지난해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기에 전년도 여우조연상 수상자가 다음해 남우조연상 시상을 하는 관례에 따른 것이다. 윤여정은 이날 파란 리본을 달고 나왔는데 이는 난민을 지지한다는 의미다.

윤여정은 시상에 앞서 “할리우드에 다시 오게 되어 기쁩니다. 저의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네가 심은대로 거둔다고’. 제가 엄마 말을 잘 들은 것 같아요. 작년에 사실 제 이름이 제대로 발음이 안 된 것에 대해서 한 소리를 했는데 이번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분들도 발음이 쉽지 않네요. 미리 발음 실수에 대한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라고 재치있게 운을 뗐다.

이어 윤여정은 수어로 오스카 수상자는 “미나리는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수어가 나오자 장내가 웅성였고 유력 수상자인 ‘코다’의 트로이 코처에 시선이 쏠렸다. 윤여정은 마침내 “오스카 상은 ‘트로이 코처’(The Oscars goes to Troy Kotsur)”라고 호명했다.

이날 자리에 참석한 수많은 영화배우들과 영화인들은 손을 반짝이는 수어 박수로 트로이 코처를 맞이했다. 윤여정도 트로이 코처에게 상을 전해주는 순간까지 수어로 그에게 감동과 축하인사를 보냈다.
한편, 영화 ‘듄’은 이날 최다관왕인 6관왕에 올랐으며, ‘코다’는 작품상, 남우조연상, 각색상 등 주요부문을 휩쓸며 3관왕에 올랐다. 주제가상은 빌리아일리쉬가 노래한 ‘007 노 타임 투 다이’가 받으며 007 시리즈는 ‘스카이폴(Skyfall)’, ‘라이팅스 언 더 월(Writing‘s On the Wall)’ 이후에 또 한번 주제가상 수상에 성공했다.

반면, 당초 최다인 12개 부문 후보에 오른 ‘파워 오브 도그’는 감독상 트로피 하나만 획득하는데 그쳤다. ‘파워 오브 도그’의 감독 제인 캠피언은 자신의 커리어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에 성공했으며 이는 94년 아카데미 역사를 통틀어 세 번째 여성 감독의 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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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자(작) 명단.

▲ 작품상=코다
▲ 감독상=제인 캠피언(파워 오브 도그)
▲ 남우주연상=윌 스미스(킹 리차드)
▲ 여우주연상=제시카 차스테인(타미 페이의 눈)
▲ 남우조연상=트로이 코처(코다)
▲ 여우조연상=아리아나 데보스(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 각본상=벨파스트
▲ 각색상=코다
▲ 촬영상=듄
▲ 편집상=듄
▲ 미술상=듄
▲ 의상상=크루엘라
▲ 분장상=타미 페이의 눈
▲ 음악상=듄
▲ 주제가상=007 노 타임 투 다이
▲ 음향상=듄
▲ 시각효과상=듄
▲ 국제장편영화상=드라이브 마이 카
▲ 장편애니메이션상=엔칸토:마법의 세계
▲ 단편애니메이션상=더 윈드쉴드 와이퍼
▲ 단편영화상=더 롱 굿바이
▲ 장편다큐멘터리상=소울, 영혼, 그리고 여름
▲ 단편다큐멘터리상=더 퀸 오브 바스켓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