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한지 30년에 가까워지니 새로운 역할에 목말랐다. 지고지순한 역할을 하다가 액션연기에 도전하고, 고구마 연기를 하다 사이다 복수를 하는 식이다.”

지난 15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블랙의 신부’의 타이틀롤 서혜승 역을 맡은 배우 김희선은 국내 취재진과 가진 화상 인터뷰에서 작품에 출연한 계기를 이같이 밝혔다.

이번 드라마는 김희선의 첫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작품이다. OTT 시청률 집계사이트 플릭스패트롤(FlixPatrol)에 따르면 ‘블랙의 신부’는 20일 글로벌 6위까지 순위가 상승했다가 24일 8위에 랭크됐다. 최상위권 결혼정보회사를 배경으로 불륜과 복수라는 한국형 마라맛 소재가 세계에서도 통했다는 분석이다.

“결혼정보회사가 한국에만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됐다. 사람을 등급매겨 짝을 짓는 건 우리나라만의 문화라고 한다. 이게 강력한 K콘텐츠 소재가 되지 않을까. 혹 이 드라마를 통해 외국에도 결혼정보회사가 생길 수 있으리라 본다.”

극 중 김희선이 연기한 서혜승은 불륜, 사내 비리 등으로 수세에 몰린 남편이 극단적 선택을 한 뒤 홀로 아이를 키우는 학원강사 겸 대학 겸임교수다. 친정어머니가 등록한 결혼정보회사에서 남편을 죽음으로 몰게 한 상간녀 진유희(정유진 분)를 만난 뒤 복수를 위해 남성 최상위권 등급인 ‘블랙’의 이형주(이현욱 분) 대표에게 접근한다.

“개인적으로 서혜승이란 인물이 좀 답답하다고 느꼈다. 뒷부분의 사이다 전개를 위해 참아야 할 필요가 있었지만, 그래도 남편의 상간녀를 만났는데 왜 가만있을까. 인간 김희선이라면 상간녀의 목 뒷덜미를 확 잡고 명치를...콱!(웃음). 하지만 기존 서혜승이 수동적인 캐릭터라면 복수를 꿈꾸는 서혜승은 능동적으로 복수를 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드라마의 배경이 결혼정보회사다 보니 자연스럽게 김희선의 등급에 대한 궁금증도 제기됐다. 김희선은 “극 중 서혜승도 국내 최고 학벌에 출중한 외모의 소유자로 설정돼 있다. 하지만 사별을 했고 아이도 있다. 그러면 등급이 내려간다. 만약 내가 결혼정보회사에 가려면 이혼을 해야 하는데 이 나이에 이혼녀에 아이까지 있다면 아마 하위등급이 나오지 않을까”라고 말하며 웃었다.

1993년 데뷔, 내년이면 데뷔 30년차다. 외모는 데뷔 때와 별반 다를 바 없이 빛나지만 한국 드라마의 발전을 지켜본 산증인이다. 김희선은 90년대와 가장 달라진 점으로 여성 캐릭터를 폭 넓게 선택할 수 있게 된 시장의 다채로움과 시스템의 비약적인 발전을 들었다.

그는 “결혼 전, 20대 때만 해도 40대 활동하는 선배님들이 맡은 역할은 주로 아이 엄마였다. 악역 역시 선과 악이 명확하게 구분됐다. 하지만 요즘은 장르도, 역할도 다양해졌다. 직전 출연작인 ‘내일’도 그렇고, 40대 중반 배우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아진 게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다”고 짚었다.

시스템의 발전을 얘기할 때는 “라떼는 말이야”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김희선은 “나는PC방에서 쪽대본을 받고 조연출이 퀵 오토바이에 테이프를 실어 날랐던 ‘테이프’ 세대”라고 말하며 웃었다.

“저절로 ‘라떼’가 나온다. 예전 촬영현장을 가장 명징하게 표현하는 게 쪽대본과 테이프이다. 방송 3~4시간 전까지 촬영하고 테이프를 들고 뛰어가 편집했는데 지금은 사전제작제로 바뀐데다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데이터가 전송된다. 90년대에는 촬영 전 장비의 라인부터 깔았는데 이제는 충전식 조명을 사용한다.”

역할과 시스템 외 김희선 자신의 위치도 달라졌다. 예나 지금이나 톱스타지만 이제는 어느 현장을 가든 그가 최고참이다. 덩달아 김희선을 따르는 후배들의 수도 많아졌다. 김희선은 후배들에게 사랑받는 선배기도 하다. 화통하고 화끈한 성격으로 현장을 웃음으로 이끈다.

“예전에는 어딜 가든 내가 막내였다. 당시 나를 편하게 대해준 분이 안재욱 선배였다. 현장에서 긴장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이라도 한마디 붙여주면 긴장이 풀린다. 나도 선배라고 가만히 있기보다 푼수같이 떠들고 있으면 후배들이 먼저 다가오고 잘 챙겨준다. 영원히 철 없는 선배로 남고 싶다.”

드라마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김희선의 인스타그램도 폭주 중이다. 그는 “매일 아침 볼 때마다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1만명씩 늘어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매 작품마다 김희선의 재발견이라고 할때는 기분 나빴지만 새로운 역할을 시도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렇게 사랑받고 있는데 글로벌 시장에서 무슨 성과를 바라나”라고 말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복수극 뒤 차기작은 로맨틱코미디물이다. 김희선은 “유해진 선배와 로맨스 코미디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려고 한다”며 “나이도 있고, 한계도 있지만 그 안에서 다양한 역할을 시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변화를 위한 노력, 30년 톱스타의 위상은 그냥 얻은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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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