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상 받으면 좋겠다. 나이들수록 주연배우로서 고민이 많아진다. ”

배우 하정우(44)가 2년여 공백기 끝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수리남’(윤종빈 권성휘 극본·윤종빈 연출)으로 복귀했다. 지난 9일 공개된 ‘수리남‘은 남미 국가 수리남을 장악한 무소불위의 마약 대부로 인해 누명을 쓴 한 민간인이 국정원의 비밀 임무를 수락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하정우는 낯선 남미국가 수리남에서 목사 행세를 하는 한국인 마약사범 전요환(황정민 분)을 잡기 위한 국정원 작전에 어쩌다 투입돼 목숨을 건 비즈니스에 뛰어든 민간인 사업가 강인구 역으로 열연했다.

에미상시상식이 열렸던 지난 1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가진 그는 특유의 유머 대신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갓 데뷔한 신인 배우처럼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수리남’은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던 하정우의 복귀작인 만큼 그는 인터뷰 전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일련의 사태 때문에 사죄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홍보사에 요청해 기자님들을 뵈고 직접 말씀드리는게 낫겠다 싶었다”며 “많은 분들에게 실망드리고 걱정드렸던 부분에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숙였다.

‘수리남’은 공개 직후 한국을 비롯한 홍콩, 싱가포르, 베트남 등에서 TV쇼 부문 1위, 공개 5일만인 지난 14일 넷플릭스 TV쇼 글로벌 3위에 올라 최근 에미상시상식에서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6관왕을 차지한 ‘오징어게임’에 이어 흥행을 예고하고 있다.

이날 국내외를 뜨겁게 달군 에미상 관련한 질문에 “상을 주시면 너무 좋다. 안그래도 인터뷰 오기 전 에미상 시상식에서 이정재 형이랑 황동혁 감독님이 상받은 걸 봤다”며 “넷플릭스 드라마에 출연하다보니 에미상을 꿈꾸는 상황이 와서 거기까지 갈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복귀작 ‘절친’ 윤종빈 감독과 함께 한 이유는

‘다작의 아이콘’이었던 그가 2년여간의 공백기 끝에 ‘수리남’을 복귀작으로 선택한 이유는 뭘까. “7년 전 학교 선배가 ‘이런 얘기가 있다’며 영화사를 통해 제안해와서 영화로 기획해 윤종빈 감독에게 제안했는데 윤 감독이 처음엔 고사했다. 여러 감독님에게 제안드렸다가 거절당해 몇 년 표류 끝에 윤 감독이 영화 ‘공작’을 끝내놓고 이야기에 흥미와 관심을 갖게돼 이 이야기를 드라마 시리즈물로 만들면 가능성이 있겠다고 했다. 처음엔 10부작 짜리였는데 해외로케이션과 ‘머니샷’이 많아 6부작으로 재정비해 탄생하게 됐다. ”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를 시작으로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 ‘군도:민란의 시대’까지 함께 한 윤 감독에게 처음 제안한 건 윤 감독이 전작에서처럼 남성들의 이야기를 잘 풀어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윤 감독이 ‘수리남’을 영화화하는 프로젝트를 처음 고사한 것에 대해 “15페이지 짜리 인터뷰 형식의 이야기를 읽어보고 2시간20분 안에 담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윤 감독이 시리즈물로 내보내야겠다고 선택하고 나서 15페이지 분량 이야기를 처음엔 10부작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오랜 친분을 자랑하는 두 사람이지만 이 떄문에 오히려 부담감이 크기도 했다. “서로 신뢰하고 작업하는 건 굉장히 좋은 부분이자 장점이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함께 해온 동지로서, 감독님으로서 다른 배우들 시선에 친하다고 봐주고 얼렁뚱땅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 더 신경쓰고 열심히 임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경력이 쌓이고 나이를 먹으니 그런 부담감이 더 든다.”

◇황정민, 편한 형 같은 존재, 평소에도 캐릭터에 집중한 모습 놀라워

‘수리남’은 하정우를 비롯, 황정민 박해수 조우진 유연식 장첸 등 탄탄한 연기력의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특히 극중 팽팽한 기싸움을 펼친 황점민과의 첫 연기호흡에 대해 “많이 편했던 같다. 너무 고수시다보니 액션신을 찍어도 전혀 부담감이 없었다. 멱살 잡거나 머리끄덩이를 잡아도 상대 배우가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공간을 열고 배려해주시다보니 굉장히 편하게 작업했다”며 “신인시절 처음 매니지먼트사에 들어갔을 때부터 알던 형이라 처음엔 굉장히 무서운 형으로 알다가 시간이 지나 작업하다보니 상대 배우라기 보다 누구보다 따뜻하고 든든했던 형같은 존재다. 윤종빈 감독보다 정민형이랑 작업하는 게 더 편했다”고 전했다.

황정민이 극중 누가 첩자인지 밝혀내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며 “안성 세트에서 이틀간 찍었는데 굉장히 연극적인 동선과 대사였다. 모든 인물을 의심하고 에너지를 높이는 장면에서 정민형의 연기를 보면서 에너지를 높이고 텐션을 잡을 수 있었다. 형이 전요환 자택 수영장에서 삼각팬티 수영복을 입고 잘 돌아다니더라. 캐릭터에 빠져 스스럼없이 잘 하시구나 놀라웠다. 정민형이 그 인물에 집중하고 들어갔기 때문에 민망한데도 개의치 않은 게 아닌가 싶다”고 감탄했다.

◇2년여 공백기, 아프지만 소중한 시간...주연 배우로서 고민 깊어가

윤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이어선지, 다소 늘어지는 부분이 있고, 평범한 수산업자가 국정원의 언더커버로 여유있게 활약하는 모습이 비현실적이란 지적도 나왔다. 이와 관련 하정우는 ”10부작 짜리 오리지널을 6부작으로 줄이면서 어쩔 수 없이 신으로 구현되는 대신 대사로 처리되는 부분이 늘어진 게 아닌가 한다. 10부작으로 확장시켜 상황이나 장면으로 구현됐다면 볼거리와 리듬감 있게 흘러갔을 텐데 6부작의 한계아니었나 싶다”고 해명했다.

자신이 연기한 강인구의 실존 인물과도 만났다. “일반 수산업자가 언더커버로 들어가 생존할 수 있을까, 고비마다 전문요원 아닌 사람이 기지를 발휘해 중학교 때 유도를 했다는 것 하나로 그 안에서 오랫동안 살아남는 걸 연기하기 위한 명분을 윤 감독과 하나씩 찾아나갔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리즈물로 극안에서 허용된 부분이 있지 않을까 했다. 실제로 이 분을 만나뵈었는데 겉으로 보여지는 에너지의 위엄이 달랐고 엄청난 걸 발휘하셔서 그게 더 영화같은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작품에 최선을 다했기에 만족해했다. 그는 “정말 최선을 다해 징글징글할 정도였고 만족스러웠다. 영화를 만들었던 팀이 모여 영화를 만드는 마음으로 드라마를 정성껏 찍었기 때문에 주어진 스케줄 내에서 6시간짜리 영화를 만들다보니 스케줄도 그렇고 서로간의 집중력이 굉장히 높았던 것 같다. 누구 하나 흐트러지거나 나사가 풀리면 전체 일정을 맞추지 못해 많이 공들이고 애를 많이 썼다”고 덧붙였다.

배우로서 나이가 들수록 깊어지는 고민도 털어놨다. “최근에 했던 ‘백두산’, ‘신과 함께’, 이번 작품까지 흥미로운 소재와 캐릭터들이 부딪쳐 시너지를 내는데 1번 주연배우로서 고충이 있다. 두 다리를 박고 스토리를 끌고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극적으로, 캐릭터적으로 새로움을 보여주고 더 잘할 수 있을까가 고민이다.”

하정우는 2019년 프로포폴 불법 투약 사실이 알려진 뒤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자 항소 없이 자숙의 시간을 가졌다. 프로포폴 파문으로 인한 2년여간의 공백기 근황에 대해 “반성도 많이 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2005년 본격적인 연기활동을 하면서부터 쉼없이 작품으로 달려오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나를 바라봤던 시간인 것 같다. 나 자신의 좌표도 확인하고 나이도 실감해 아팠지만 소중했던 시간이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2020년 이후 아무것도 안해 2년 반이라는 공백보다 더 길었던 시간이었다. 정신이 쨍한 게 잠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1년간은 촬영하느라 도미니카공화국, 모로코 등 해외에 있었고 한국에선 지방에서만 있어 친구들을 만날 여건도 안돼 모든 게 낯설다”면서도 “‘수리남’을 재밌게 봐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한편 하정우는 복귀작 ‘수리남’을 시작으로 영화 ‘피랍’과 ‘보스턴 1947’, ‘야행’까지 다양한 작품을 잇달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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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