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외비(이원태 감독)’는 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이성이 공존하는 작품이다. 199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권력을 지키는 자와 쫓는 자의 냉정과 열정이 부딪친다.

차가움과 뜨거움의 만남은 필시 균열을 내곤 한다. 팬데믹으로 2년간 묵혔던 영화는 안타깝게도 창고에서 숙성되지 못한 채 시류에 뒤쳐졌다. 흥미진진한 도입부와 연기파 배우들의 묵직한 이름값이 아깝게 영화의 메시지는 관객의 가슴에 도달하지 못하고 해운대 앞바다를 맴돌기만 한다.

그럼에도 ‘대외비’를 이끄는 배우들의 열연만큼은 이 영화의 백미다. 조진웅, 이성민, 김무열 세 남자의 각기 다른 개성과 빼어난 연기력만큼은 영화의 투박한 만듦새를 상쇄시킨다.

조진웅은 단연 영화 속 뜨거운 열정의 표상이다. 그는 1992년 부산 지역 총선에서 벌어지는 권력 쟁탈전에서 금배지를 갖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만년 정치지망생 전해웅으로 분했다. “해운대는 전해웅”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지역 민심을 다진 해웅은 당선 뒤 시민들을 위해 정의롭게 일하겠다 다짐한다.

하지만 이런 그의 결심이 부산 정치판의 실세 순태(이성민 분)가 짜놓은 지역 재개발 이권 사업과 엇갈리자 하루아침에 공천 무산 통보를 받는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바람이 들면 집안 살림이 거덜난다고 했다. 2004년 선거 비용 반환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정치권에 도전했다 가산을 탕진하는 사례를 쉽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자존심에 깊이 상처받은 해웅은 ‘범죄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부산 지역 조직폭력배 필도(김무열 분)에게 재개발 지역 정보를 넘기고 고리의 선거자금을 빌린다. 그러나 선거에서 낙마한 해웅은 살아남기 위해 권력층에 서서히 다가간다.

조진웅은 “해웅도 초반에는 국민과 대중, 지역구 사람들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권력이라는 상황에 몰려가며 점차 변한다. 아마 가슴 속 깊이 권력욕이 있기에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1992년은 총선과 대선이 같은 해에 열렸다. 그만큼 전국적으로 정치 열기가 뜨거웠다. 조진웅은 해웅 역을 위해 당시 정치인들의 연설 톤을 모니터링했다. 그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해웅의 절실함을 표현하기 위해 소신과 확신을 주는 연설톤을 연구했다”며 ”개인적으로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이 가장 와닿았다”고 말했다.

영화는 해웅의 뜨거운 열정이 순태와 만남으로 인해 어떻게 차갑게 변하는지 그 과정을 조명한다. 조진웅은 “영화의 영어 제목이 ‘더 데빌스 딜’(The Devil‘s Deal)이다. 영화 속 인물들이 절대악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제목”이라고 설명했다.

순태 역의 이성민과는 무명 시절부터 함께 동고동락했던 사이다. 2009년 KBS2 ‘열혈장사꾼’에서 조연배우로 만나 친해져 지금은 허물없는 사이가 됐다. 조진웅은 “현장의 판을 깔아주고 상대 배역을 편하게 해주는 게 성민 형의 장점”이라며 “언론시사회 전날에도 성민이 형이 출연한 디즈니+ ‘형사록’을 보다가 밤을 꼴딱 새고 말았다”고 웃었다.

‘대외비’는 예상가능한 시나리오대로 전개되지만 끝이 개운하지 못하다. 씁쓸한 여운을 남긴 영화의 메시지에 대해 조진웅은 “막무가내로 권력을 좇는 삶이 과연 맞는지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치 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현명하고, 올바른 선택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말했다.

“‘대외비’는 정치 영화가 아니다. 인간의 본질을 다루기 위해 총선과 국회의원이라는 직업군을 끌어왔을 뿐이다. 평소 선거에 잘 참여해야 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는데 영화를 찍으며 다시금 현명한 선택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저 사람들(국회의원)들이 잘해야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세금으로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게 정치 아닐까. 나도 ‘대외비’를 통해 나 자신의 선택을 점검하는 계기가 돼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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