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BC결산(리부트 KBO) 2

국가대표라 믿기지 않는 실투 퍼레이드
야구의 승패는 적응력.변수 관리가 관건
1차 전훈 '오키나와'였다면 달라질 결말
장소 결정 소속팀 무시하기 힘들었을 듯

소속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무리 나라를 대표한다고 해도 두 마리 토끼를 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전후관계만 돌아봐도 그렇다. 소속팀에서 쌓은 커리어로 대표팀 사령탑이 됐다. 대표팀에서 빼어난 성과를 내도 소속팀이 무너지면 누구도 감독 생명을 장담해주지 않는다. 그 결과 대회 전까지 두 차례 밤새 비행기를 타고 두 차례 바뀐 시차에 적응해야만 했다. 결과 만큼이나 과정도 아쉬운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대표팀 얘기다.
결국 다시 원점이다. 불과 몇 년전 전임감독제에 대한 회의론과 마주했는데 이제는 겸임감독제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최고 수준의 국제대회에서 최악의 투구를 보여준 투수들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밸런스가 무너진 채 스트라이크존에서 벗어나는 공을 반복해서 던졌고 그러면서 두 차례 대량실점 패배를 당했다. 구위 또한 정상 컨디션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가대표 선수라고 믿을 수 없는 수준의 투구였다. 현재 시범경기에 임하고 있는 KBO리그 투수들보다 준비가 덜 된 모습이었다.
그냥 벌어진 일은 아니다. 대회 장소는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인 일본 도쿄인데 지구 반대편에 있는 미국 애리조나에서 준비에 임했다. 최상의 기후를 기대했는데 이상기후로 인해 컨디션이 엉망이 됐다. 소속팀이 애리조나에서 훈련한 선수들은 시차 없이 대표팀 훈련에 돌입했으나 호주, 괌, 오키나와, 한국 등에서 온 투수들은 시차를 맞춰야 했다. 그리고 대회를 열흘 가량 앞두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또 시차적응에 임했다.
야구는 적응을 잘하는 쪽이 승리한다. 투수는 특히 그렇다. 타자와 승부에 앞서 날씨와 공, 마운드 흙의 재질까지 여러가지 변수를 극복했을 때 원하는 결과가 나온다. 투수들이 실전에 앞서 한 달 가량 준비 과정을 거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대표팀 투수들은 대회에 앞서 수많은 변수와 싸워야 했다. 방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소집일인 2월 14일 애리조나가 아닌 일본 오키나와에서 대표팀이 모였다면 컨디션 관리에 한층 수월했을 것이다. 시차적응 변수를 피한 채 준비기간 3주를 보낼 수 있었다. 평가전 상대를 구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삼성이 일찍이 오키나와에서 훈련했고 2월말에 KIA, 한화, SSG가 오키나와로 향했다. 대표팀은 2월 16일 애리조나에서 NC를 상대로 첫 실전에 임했다. 이른 시기에 실전에 임해준 NC에 미안함을 품고 경기를 바라봤는데 투수들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닌 게 더 큰 문제였다. 이강철 감독이 대표팀과 KT를 겸임하지 않았다면, 대표팀 훈련장소도 애리조나가 아니었을 것이다. KT 외에 5팀(키움, LG, KIA, NC, 한화)이 애리조나에서 훈련하는 게 명분이 될 수 있었으나 두산, 삼성, 롯데 선수들은 2주 간격으로 지구 반 바퀴를 돌아야 했다. 호주 캠프에서 절정의 컨디션을 자랑했던 곽빈이 대표팀 합류시점부터 하향곡선을 그린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대표팀은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이후 전임감독제로 운영됐다. 2015 프리미어12 우승,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우승을 이뤘으나 2017 WBC 2라운드 진출 실패, 2020 도쿄올림픽 노메달 등 전임감독제에서도 늘 성공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준비 과정에서 물음표가 붙지는 않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018 아시안게임 후 총재가 전임감독제를 부정하는 발언을 해 곤혹을 치른 바 있다. 외부에서 선수선발 과정을 문제삼으며 벌어진 유치한 논쟁과 이슈를 KBO가 전혀 제어하지 못했다. 그 결과 선동열 전 대표팀 감독이 금메달을 목에 걸고도 자진사퇴했다. 다급히 김경문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지만 도쿄올림픽 실패로 유니폼을 벗었다. 이후 겸임감독제의 문을 열었는데 결과는 또 다시 실패다.
차기 대표팀 사령탑 선임에 앞서 고민을 피할 수 없는 시점이다. 더불어 다음 국제대회에서는 준비과정도 보다 철저해질 필요가 있다.  

윤세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