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네 살에 이룬 '태극마크 꿈'

지난 세 시즌 간 56골, 득점왕만 두 차례
외국인 사령탑 체제 대표팀선 줄곧 외면
태국과 월드컵 예선서 실력 증명만 남아

'34세 골잡이' 주민규(34,·울산HD)가 고대하던 A대표팀 태극마크 꿈을 이뤘다. 리빙레전드이자 명스트라이커 출신 사령탑 황선홍 감독으로부터 선택받았다.
주민규는 11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태국과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2연전에 나설 축구국가대표팀 23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간 상처투성이였다. 주민규는 지난 세 시즌간 무려 56골을 몰아쳤다. 그리고 두 번 득점왕(2021, 2023)에 등극했다. 2022시즌에도 득점왕을 차지한 조규성과 나란히 17골을 기록했는데, 경기 수가 더 많아 아쉽게 타이틀을 놓친 적이 있다. 그럼에도 '토종 득점왕' 주민규는 이상하리만큼 A대표팀과 연이 없었다. 유럽파 공격수가 최전방 자리를 독차지했다. 조규성(미트윌란) 황의조(알란야스포르) 오현규(셀틱) 등 유럽파 공격수가 부진을 겪을 때도 그의 자리는 없었다.
주민규는 울리 슈틸리케(독일) 전 감독 시절인 2015년 동아시안컵 예비 명단(50명)에 이름을 올렸지만, 최종 명단에 뽑히지 않았다. 이후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을 지휘한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지난 카타르 아시안컵 직후 경질당한 클린스만 감독 때까지 한 번도 선택받지 못했다.
마침내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골잡이 출신인 황 감독으로부터 낙점받았다. 황 감독은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지휘할 때도 주민규를 와일드카드로 선발하고 싶어 했다. 다만 클럽 차출 의무가 없는 대회일 뿐더러 서른이 넘은 주민규에겐 동기부여가 크지 않았다. 아시안게임은 금메달 획득에 따른 병역 특례 혜택이 국내 선수에게 최대 동기부여인데, 그는 일찌감치 군 복무를 마쳤다. 태극마크에 대한 동경 때문에 아시안게임에 간다고 해도 절실한 후배 자리를 차지하는 것에 부담을 느낄 법했다. 또 울산의 막판 리그 우승 경쟁에서 주민규는 핵심 선수였다.
스스로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다"고 말할 만큼 주민규는 태극마크에 마음을 비웠다. 가슴 한쪽에 한을 품고 달렸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최근 커리어는 물론, 이번시즌도 시작부터 골 폭풍이다. 지난달 반프레 고후(일본)와 아시아챔피언스리그 16강 1,2차전에서 3골을 몰아쳤다. 소속팀 홍명보 감독은 주민규의 체지방 지수 등을 언급하며 팀 내에서 가장 좋은 몸 상태라고 치켜세웠다.
황 감독도 "축구는 여러 요소가 있지만 득점력은 또 다른 영역이다. 3년간 리그에서 50골 이상 넣은 선수는 전무하다.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다"며 주민규를 극찬했다.
이젠 증명하는 일만 남았다. 오랜 기다림 속 태극마크를 단 만큼 A매치에서도 제 기량을 발휘할지 지켜볼 일이다.
주민규는 경사스러운 날에 감정 표현을 자제했다. 12일 전북 현대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을 앞두고 있어서다. 울산 구단을 통해 "오늘 소식과 무관하게 내일 경기를 잘 치르겠다"며 대표 발탁에 관해 말을 아꼈다. 신인의 마음으로 A대표팀에 입성하지만, 경기력과 팀을 위한 마음은 베테랑 중 베테랑이다.  

김용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