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유감을 표했더니, 의장이 등판(?)했다.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혹평이어도 ‘일을 열심히 했구나’라고 생각할 내용이면 이해라도 한다”는 자조섞인 한탄도 나왔다. 스노우볼처럼 커지는 이른바 ‘하이브 엑스파일’ 얘기다.

하이브엔터가 작성해 산하 레이블 최고책임자끼리 돌려본 ‘위클리 음악산업 리포트’ 파문이 일파만파다. 방시혁 의장이 문건 작성자에게 공유 대상자를 추가하라고 지시한 이메일이 30일 공개돼 파문은 더 커졌다. 논란 발생 엿새 만인 29일 하이브 이재상 CEO가 공식사과했지만 ‘언발에 오줌누기’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온다.

문건을 작성한 것만으로도 경악할 일인데, 이른바 고위 책임자들이 매주 돌려본 사실이 드러나 가요계, 특히 아이돌 기획사에 대한 신뢰를 송두리째 빼앗아버렸다.

발단은 지난 24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음악산업 리포트’를 공개하면서다. 자사 아이돌뿐만 아니라 경쟁사 아티스트에 대한 평가를 담은 리포트로, 하이브 측이 매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용이 충격적이다. “○○○는 버리고 판을 새로 짜면 된다” “(경쟁사 여자 아이돌은) 연습생 수준” “여돌은 섹스어필이 도드라지는 경향이 생기는데 ○○에게서도 징후가 보임” 등으로 신랄하게 작성했다.

더 놀라운 점은 일명 ‘얼평’ 일색이라는 것. “놀랄 만큼 못생김” “못생김의 시너지가 참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님” “멤버들이 놀랄만큼 못생겨서 그동안 못뜬 이유가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평가를 ‘음악산업 리포트’라고 내놨다. 상도의도 없고, 글로벌 콘텐츠 산업으로 성장한 아티스트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찾아보기 어렵다. 문건 일부를 읽은 업계 관계자는 “누가 누구 외모를 지적하는가”라며 아연실색했다.

해당 문건이 국회에서 공개된 뒤 하이브는 “유출자를 색출하겠다”면서 문건을 작성한 A 실장의 직위를 해제했다. 전형적인 꼬리자르기, 책임회피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이 CEO가 “여론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부 리더십에게 공유했지만, 그 내용이 매우 부적절했다”며 “K팝 아티스트를 향한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표현이 그대로 담긴 점, 작성자 개인의 견해와 평가가 덧붙여진 점, 그리고 그 내용이 문서로 남게 된 점에 대해 회사를 대표해 모든 잘못을 인정하며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사과 직후 방시혁 의장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책임론이 다시 부상했다. 가뜩이나 민희진 전 어도어 CEO와 법적분쟁, 이른바 뉴진스 사태 등으로 K팝 이미지를 실추한 하이브는 ‘부끄러운줄 모르고 호박씨 까는 집단’이라는 낙인까지 찍힐 위기에 처했다. 내부문건이 언론에 흘러나오는 정황을 보면 법적분쟁과 무관치 않다는 합리적 추론도 가능한데, 이 또한 자초한 일이다. 집안 단속 실패로 모든 성과를 부정당할 위기에 처한 셈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로 K팝 위기론이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 빌미를 하이브가 제공한 것이라는 비난을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도덕관념 결여는 대중문화 산업에서는 치명타다. 신뢰를 쌓는 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몰락은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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