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훈련 방식 비효율적"…배드민턴협회 "안세영 측과 갈등 없었다"
(서울=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안세영(삼성생명)이 대한배드민턴협회를 향해 쏟아낸 분노의 '작심 토로' 후폭풍이 거세다.
한국 배드민턴 선수로는 28년 만의 올림픽 단식 금메달 획득이라는 기쁨을 나누기도 부족한 시간에 안세영은 자신의 부상 관리에 안일하게 대처하고 복식 종목에 더 신경을 쓴 배드민턴 대표팀, 충분한 설명 없이 국제대회 출전을 막은 협회를 향해 오랫동안 속으로 삼켜왔던 아쉬움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안세영은 지난 5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포르트드라샤펠 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세계 9위 허빙자오(중국)를 2-0(21-13 21-16)으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로써 안세영은 1996년 애틀랜타 대회 금메달리스트 방수현 이후 28년 만에 배드민턴 남녀 단식을 통틀어 역대 두 번째 단식 종목 우승자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하지만 안세영은 금메달 획득 뒤 기자회견에서 "무릎 부상이 생각보다 심각했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대표팀에 많이 실망했었다. 선수들을 체계적으로 잘 키워줬으면 좋겠다"며 대표팀 훈련과 대한배드민턴협회의 의사결정 방식 등에 불만을 드러내 충격을 줬다.
안세영의 발언 이후 배드민턴협회 운영의 난맥상을 성토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커졌고, 대통령실은 물론 문화체육관광부까지 배드민턴협회를 전반적으로 살펴보겠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하지만 배드민턴협회는 "안세영측과 갈등이 없었다. 내용을 확인해보겠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 '전담 트레이너의 부재'…갈등의 불씨 됐나?
안세영은 배드민턴 대표팀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1대1 전담 트레이너의 보살핌을 받았다.
지난해 7월 컨디셔닝 관리사로 대표팀에 합류한 한수정 트레이너는 올해부터 안세영의 전담 트레이너를 맡았다.
안세영이 작년 10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무릎을 다친 뒤 힘들어할 때도 한 트레이너는 가장 가까이서 24시간 돌봐주며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해줬다.
안세영은 지난 3월 전영오픈 준결승에서 탈락한 뒤 귀국길에서 "올림픽까지 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트레이너 선생님을 믿고 하루하루 버티는 중"이라며 깊은 신뢰를 보냈다.
하지만 한 트레이너는 파리 올림픽에 합류하지 못했다.
지난해 7월 배드민턴협회와 1년 계약한 한 트레이너는 지난 6월 계약기간이 끝났고, 안세영의 부탁에 따라 협회는 올림픽 기간인 8월 7일까지 계약 연장을 요청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배드민턴계 관계자는 "트레이너가 실제 올림픽에 가기로 했었는데, 출국을 며칠 앞두고 그만두기로 한 것으로 안다"라며 "재활의 시간을 함께하며 믿고 의지했던 트레이너가 정작 올림픽 무대에서 함께 하지 못한 상황을 안세영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 "대표팀 나간다고 올림픽 못 뛰는 건 야박"…국제 대회 출전 못 하나?
안세영의 작심 발언 중에 또 하나 눈에 띄는 부분은 '대표팀에서 나간다고 해서 올림픽을 못 뛰는 것은 선수에게 야박하지 않나 싶다'라는 부분이다. '국가대표 은퇴'를 암시하는듯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배드민턴협회 규정에 따르면 국가대표를 은퇴한 선수가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승인 국제대회 참가는 가능하다.
배드민턴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크고, 국가대표로 5년 이상 활동해야 하며 남자는 만 28세 이상, 여자는 만 27세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2018년부터 대표팀에서 뛴 안세영은 이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다.
다만 대표팀의 요청이 있으면 공로 및 연령기준을 충족하지 못해도 대회 참가를 허용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도 있다. '윙크 보이' 이용대도 대표팀 은퇴 이후 개인 자격으로 국제 대회에 출전한 바 있다.
결국 안세영이 태극마크를 반납해도 배드민턴협회의 허락 속에 BWF 주관 대회에 꾸준히 참가하면 올림픽 랭킹 포인트를 쌓아서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 나설 수 있는 길은 있다.
◇ '대표팀 훈련의 비효율성 강조'…대안은 안세영 '전담팀'?
안세영은 "배드민턴도 양궁처럼 어느 선수가 올림픽에 나가도 메달을 딸 수 있으면 좋겠다"라며 대표팀 훈련 방식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단식과 복식의 차이가 있는데, 그동안 성적이 나왔던 복식 위주로 대표팀이 운영됐다는 지적이다.
안세영이 이번 파리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기 직전 배드민턴 대표팀이 마지막으로 수확한 올림픽 단식 금메달은 1996년 애틀랜타 대회가 마지막일 정도로 단식 종목은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배드민턴 관계자도 "예전부터 단식보다 복식 종목에서 성적을 내다보니 단식 종목 선수들이 훈련에서 소외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2028년 LA 올림픽에서 올림픽 2연패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안세영에게 지금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대표팀에서 나와 전담팀을 꾸리는 것도 방법이다.
앞서 수영의 박태환이 '전담팀'을 앞세워 개인 훈련에 집중했던 사례도 있다.
안세영은 기자회견에서 "대표팀에서 나간다고 올림픽을 못 뛰게 하는 것은 야박"하다고 말하는 등 대표팀에서 빠질 의사도 있음을 내비쳤다. 이 부분에서는 법적 다툼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배드민턴협회의 배려와 전담팀의 비용을 책임질 후원업체만 마련되면 안세영은 더 나은 환경에서 운동을 이어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다만 안세영의 하차는 대표팀에는 악재가 될 수도 있다.
배드민턴협회는 스폰서 계약을 통해 대표팀을 지원한다. 하지만 스타플레이어가 빠져나가면 스폰서 업체의 마케팅 효과도 떨어질 수밖에 없어 지원 규모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horn9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