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육상 전설' 아쉬운 100m
20세 어린 선수들과 경쟁해 7위
4월 세상 떠난 아버지 떠올리며
마지막 패럴림픽서 혼신의 질주
"2026 장애인亞경기까지 뛰겠다"
"아버지가 하늘에서 보고 계실 텐데…"
'장애인 육상 전설' 전민재(47ㄱ전북장애인육상연맹)가 울었다. 환하게 웃으며 경기장에 등장했고,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렸다. 다 끝난 후 아버지를 떠올렸다. 메달을 선물하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전민재는 5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2024 파리 패럴림픽대회 육상 여자 100m(스포츠 등급 T36) 결선에서 14초95에 결승선을 통과해 7위를 기록했다.
자기보다 20살 어린 선수들과 경쟁했다. 메달까지 땄으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현실대로 녹록지 않았다.
경기를 마친 후 전민재를 만났다. 경기장 밖 바닥에 앉은 전민재는 취재진 앞에서 편지를 빼곡히 적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엄지발가락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다섯 살 때 원인 모를 뇌염으로 뇌병변 장애를 얻었다. 단어를 발음하거나 글씨를 쓰기 힘든 상태다. 스마트폰 등을 활용해 소통하고 있다.
전민재는 스마트폰에 쓴 편지를 음성으로 변환해 취재진에게 들려주다 연신 눈물을 훔쳤다. 특히 4월 눈을 감은 아버지 이야기를 담은 구간에서는 고개를 떨구고 울었다.
전민재는 "자나 깨나 항상 내 걱정과 '우리 (전)민재 최고'를 외치며 응원해 주시던 아버지가 지금은 곁에 안 계시고 하늘에서 보고 계실 텐데, 아버지께 메달을 선물로 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마지막 패릴림픽이 될 것 같아서 메달을 꼭 따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보답해드리고 싶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2008년 베이징대회부터 5회 연속 패럴림픽 출전으로 장애인 육상을 이끌었다. 지난해 2022 항저우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를 마치고 은퇴를 고민했다가 주변에서 그를 설득해 파리까지만 뛰리라 결심했다.
전민재는 선수 생활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레이스에서 후회 없는 역주를 펼쳐 보이고 싶었다. 비록 순위는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전민재는 한 번 더 도전하겠다고 결심했다.
전민재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전민재는 딱 2026 나고야ㄱ아이치 장애인아시안경기대회까지 하려고 한다"며 "그때가 정말 마지막이다. 트랙에서 메달을 딸 수 있는 선수가 전민재라서다. 그래서 은퇴하지 않으려고 한다. 딱 그때가 마지막이다. 그때까지 전민재 선수 기억해 주시라"고 말했다.
또 "올해는 생활보조가 들어올 수 없어서 훈련하는 데 불편함이 많다. 몇 년 동안 엄마가 생활보조로 들어오셔서 제 옆에서 손발이 돼 챙겨주셔서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었는데, 엄마가 없으니 여러모로 불편한 게 많아서 운동하는 데 애로사항이 많았다"고 밝혔다.
장성준 대표팀 감독은 "국가대표 선수가 많다 보니 예산 부분이 있었다"며 "우리 지도자들이 최선을 다해 선수에게 필요한 부분을 케어했지만, 어떤 도움도 가족만큼 편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전민재는 또 이번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 대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훈련했다. 마음속으로 매일 '나는 할 수 있다'를 되뇌며 훈련했다"고 밝혔다. 이어 "기록이 안 나올 때면 '이제 선수 생활은 그만해야 할까'라는 고민과 슬럼프에 빠진다. 기록이 잘 나오면 '열심히 하니 내가 연습한 만큼 좋은 기록으로 보상받는구나' 한다.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전민재는 다시 한번 가능성을 보여줬다. 예선에서는 14초69를 기록해 2019년 두바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세운 개인 최고 기록 14초68에 몹시 근접했다.
전민재는 "전민재를 응원해 주신 모든 분,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 원반월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 친한 우리 잘생긴 이윤오 감독님, 전북체육회 직원분들, 류한의원 원장님, 국가대표 장성준 감독님, 국가대표 이수진 코치님께 감사의 말씀 전한다"고 말했다.
파리 | 김동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