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백 실험, 희망을 봤다.”

지난 15일 용인미르스타디움에서 끝난 일본과 202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남자부 최종 3차전에서 0-1로 패한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스리백을 대회 기간 꾸준히 가동하고 실험한 것을 강조했다. 세계적 강호와 겨루는 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을 1년 앞두고 전술 플랜B를 실전에 대입해 긍정적 미래를 그렸다는 의미다.

홍명보호가 지향해야 할 목적지는 분명 월드컵 본선이다. 한일전 패배는 국민 정서상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냉정하게 동아시안컵 결과는 큰 의미가 없다. 게다가 양국 모두 핵심 유럽파가 빠진 무대다.

그럼에도 홍명보호가 ‘경고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할 지점이 있다. 일본전 전반 45분간 노출된 ‘일대일 싸움’의 절대 열세다. 일본 축구는 오래전부터 우리보다 앞선 선진적인 유스 시스템으로 선수가 어린 시절부터 승부보다 성장에 중점을 둔 교육을 받는다. 성인 레벨이 됐을 때 전술 이해도와 패스의 질 등 기본기가 한국 선수보다 낫다.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장기간 한일전에서 한국이 우위를 보인 건 상대 장점을 제어할 피지컬, 속도, 역사적 배경 등에서 비롯한 강한 승리욕이 어우러져서다.

근래 들어서는 양국의 문화적 거리감이 좁혀지며 축구 스타일도 변하고 있다. 한국은 어릴 때부터 예쁘게 공을 차는 습성에 익숙해지고 있다. 상대가 누구든 선 굵은 축구보다 후방 빌드업을 선호하는 추세다. 일본은 기존 빌드업 색채를 유지하면서 피지컬이 좋고 몸싸움을 즐기는 유형의 선수가 늘고 있다. 한 마디로 한국은 트렌드를 따르지만 고유의 장점을 잃고 있고, 일본은 장점을 극대화하며 단점을 빠르게 보완하고 있다.

동아시안컵 한일전은 이를 충분히 엿볼 만하다. 양 팀 모두 스리백을 기본으로 수세시 파이브백을 가동하는 비슷한 형태의 전술을 가동해 더 비교됐다. 일본은 속도를 지닌 강한 전방 압박과 안정적인 볼 제어, 패스로 한국을 흔들었다. 반면 한국은 상대 압박에 빠른 템포로 대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무의미한 직선 패스가 남발했다. 기본기에서 확연히 차이가 났다.

당장 심각하게 여겨진 건 일대일 경합. 과거엔 힘과 피지컬, 속도로 일본을 제압하는 장면이 많았는데, 정반대 양상이 됐다. 상대 왼쪽 윙백의 소마 유키, 오른쪽 측면에서 호흡을 맞춘 ‘혼혈 듀오’ 저메인 료, 모치즈키 헨리 히로키에게 고전했다. 그나마 후반에 장신 공격수 이호재(포항)와 오세훈(마치다)이 투입된 뒤 공중전을 통해 전반보다 나은 경기력을 뽐냈는데, 일본의 조직적인 수비에 득점은 해내지 못했다.

일대일 대결에서는 개인 전술이 중요한 승리 요건이다. 다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투쟁심이다. 구시대적인 표현으로 여기는 ‘헝그리 정신’과 전혀 다른 개념이다. 경기에 강한 몰입도를 바탕으로 이기거나 극복하려는 마음가짐이다. 시대와 상관없는 프로로 자세다. 한국은 이 지점에서 일본에 밀렸다.

월드컵 본선에서 상대하는 팀은 아시아권 선수보다 개인 전술이 뛰어나다. 일대일 대결에서 어려움을 겪어 협력 수비, 또는 극복할 부분 전술이 중요하다. 그런데 완성도를 높이려면 승리를 향한 투쟁심이 동반돼야 한다. ‘라이벌’ 또는 ‘비슷한 수준’으로 여기는 일본을 상대로 일대일, 투쟁심까지 열세를 보이면 월드컵 본선 전망을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 어찌 보면 플랜B보다 더 중요한 요소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