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8년 박세리 이후 20년간 11차례나 우승

[뉴스포커스]

신예 이정은 깜짝 우승, 한국인으로는 10번째 쾌거
한국계 미셀 위도 한차례…"사실상 코리아오픈"
'나도 세리 언니처럼 할 수 있다'자신감이 원동력"

미국 여자골프(LPGA)의 US여자오픈 대회는 그야말로 한국 선수들에게 '약속의 땅'이 돼버렸다.

지난 3일 끝난 제74회 US여자오픈의 우승컵은 이정은(23)에게 돌아갔다. 이로써 이 대회 한국인 우승자는 9명으로 늘어났다. 박인비(31)가 두차례 정상에 올라서 10번째 한국인 우승이다.

한국 핏줄인 미국 동포 미셸 위(한국이름 위성미)까지 포함하면 11차례 한국 또는 한국계가 우승했다.

1998년 박세리를시작으로 2005년 김주연, 2008년 박인비, 2009년 지은희, 2011년 유소연, 2012년 최나연, 2013년 박인비, 2015년 전인지, 2017년 박성현 이후 이정은이 한국선수로는 10번째 US여자오픈 우승트로피를 차지한 것이다. 이는 미국 선수(51명) 다음으로 많다.

특히 2008년부터 올해까지 12년 동안 한국 국적이 아닌 우승자는 4명 뿐이다. 세계 무대를 석권하는 한국 양궁에 버금가는 쾌거다. 오죽하면 미국 언론에서'이름은 US오픈이지만 사실상 코리아오픈이나 다름없다'는 보도가 나왔을까.

LPGA 투어에서 한국 선수의 강세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다른 메이저 대회와 비교해 보면 US여자오픈에서 한층 더 두드러진다. 나머지 메이저 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은 위민스 PGA 챔피언십 7회, 위민스 브리티시오픈 6회, ANA 인스퍼레이션 5회, 에비앙 챔피언십 2회 정상에 올랐다.

프로 스포츠 개인 종목에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US여자오픈이 LPGA 투어에서 가장 난도 높은 코스에서 열린다는 점을 주목한다.

세계 최고 권위의 여자 골프 대회인 US여자오픈은 여자 대회 중 코스 세팅이 가장 까다롭다. US여자오픈을 주최하는 미국골프협회(USGA)는 누가 더 많은 버디를 잡아내느냐가 아닌 누가 실수를 덜 하느냐에 주안점을 두고 코스를 세팅한다. 대회를 주관하는 US GA는 '14개의 클럽을 모두 잘 사용하는 선수가 우승하도록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코스는 길고, 페어웨이는 좁고, 러프는 깊고, 그린은 단단하고 빠르게 만든다. 그런데 이런 코스에서 잘하기 위해선 약점이 없어야 한다. 장타를 쳐도 방향이 좋지 않으면 러프를 헤매게 된다. 똑바로만 쳐서는 긴 코스에서 투온이 버겁다. 단단하고 빠른 그린을 공략하기 위해선 섬세한 쇼트게임과 퍼팅 능력을 갖춰야 한다. 나흘간 이런 '지옥 코스'에서 살아남으려면 체력과 집중력이 뛰어나야 한다. 주니어 시절부터 난코스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온 한국 선수들에게 잘 어울리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US여자오픈에 한국 선수 우승이 많아진 배경엔 뭐니뭐니해도 어릴 때부터 경쟁이 심한 무대에서 단련된 강인한 정신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2011년 우승하고 올해는 공동 2위를 차지한 유소연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뛰는 선수들은 1998년 박세리 언니가 '맨발 투혼'으로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골프를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도 세리 언니처럼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해야지~'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박인비도 "한국 선수들 우승이 늘어나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여자 골퍼들에게 US여자오픈이 성지(聖地)나 다름없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