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리거 6명-대학생 2명… 진정한 언더독 반란
국제대회 경험 많지 않은 선수들 '투지'로 뭉쳐

한국 남자축구 사상 처음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남자대회 결승에 오른 '정정용호'가 진정한 언더독의 반란을 보여주고 있다.

2019 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 참가한 한국 대표팀은 역대 최강의 전력이라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이강인(발렌시아)을 비롯해 김현우(디나모 자그레브), 최민수(함부르크) 등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는 태극전사가 3명 포함됐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국제대회 경험이 많지 않다.

특히 정정용호의 주축인 K리그 소속 선수들은 팀 내에서도 안정적인 출전 기회를 보장받기 보다는 힘겨운 주전 경쟁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K리그에서는 영건들의 출전 기회를 늘리기 위해 22세 이하 의무 출전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어린 유망주들에게 모두 기회가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정정용호에 승선한 9명의 K리그1 선수들 가운데 일부는 아직도 프로 1군 데뷔전을 치르지 못했다.

정정용호의 결승행 성과가 더욱 빛나는 이유는 빅클럽 선수들이 즐비한 월드컵 무대에서 K리그2와 아마추어 선수들의 팀 내 비중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21명 최종엔트리 가운데 엄원상(광주), 오세훈(아산), 이지솔, 김세윤(대전), 이상준(부산), 황태현(안산) 등 K리그2 소속은 6명이다. 이들 가운데 오세훈, 이지솔, 황태현 등은 주전 자원으로 월드컵 결승 진출에 주춧돌을 놨다. 엄원상, 김세윤, 이상준도 교체와 백업 자원으로서 팀 내에서 소금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최고의 유망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는 각 대륙에서 일찌감치 능력을 인정받아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수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8강 상대인 세네갈의 경우 프랑스, 잉글랜드, 스페인, 네덜란드에서 뛰는 유럽파가 8명이나 포진됐다. 4강 상대인 에콰도르도 5명의 유럽파가 최종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정정용호에는 아직 프로에 데뷔하지 못한 대학생 신분의 최준(연세대)과 정호진(고려대)이 있다. 연령대별 월드컵이지만 본선 무대에서 아마추어 선수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일본도 이번 월드컵 최종엔트리 21명을 모두 J리거로 채웠다. 본선 24개국 가운데 한국과 뉴질랜드의 일부 선수가 대학생 신분으로 이번 대회에 참가했다.

이번 월드컵은 어린 태극전사들이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대회다. 또한 출중한 개인 능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팀이 하나가 된다면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교훈을 안겨준 대회가 됐다.

도영인 기자

"이강인이라는 스타 탄생, 한국 축구 흐름 바꿀 '사건'"

[단독인터뷰]

'레전드' 차범근 감독도 천재성 찬사
"역사적인 경기엔 꼭 중심 인물 등장
세네갈전 조영욱 골 도운 패스 완벽"

"이강인이라는 스타 덕분에 대한민국 축구가 도약할 것이다."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은 이강인(18.발렌시아)의 이름값을 확인하는 무대였다. 조별리그에서는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선제골을 도우며 한국을 '죽음의 조'에서 16강으로 끌어올리더니 토너먼트가 시작되자 '에이스'로서의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8강 세네갈전에서 한국이 기록한 3득점에 모두 관여했다. 1골 싸움으로 끝난 4강 에콰도르전에서는 재치있는 공간 패스로 최준과 결승골을 합작했다. 이로써 한국은 36년 만에 4강 재진출이라는 역대 최고 성적을 넘어 FIFA 주관 남자 대회 사상 첫 결승 첫 진출이라는 역사적인 성적표를 써냈다. 이강인 역시 이번 대회 '골든볼'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했다.

'한국 축구의 영웅' 차범근 감독은 오랜 시간 최전선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의 발자취를 지켜봐온 인물이다. 이 한국 축구의 산증인은 이번 대회에서 이강인이 보여준 활약을 "하나의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차 감독은 "단순히 한 경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경기를 마치고 나면 알게 된다. 그 경기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서 향후 축구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역사적인 경기를 하게 되면 그 가운데 꼭 중심적인 인물이 있다. 그게 바로 '스타'다. 이번 경기를 통해서 이강인이라는 스타가 등장했다. 한국 축구의 큰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차 감독은 특히 이강인이 세네갈전 조영욱의 3-3 동점포 도왔을 때를 콕 찍었다. 당시 이강인은 상대 선수 3명을 추풍낙엽처럼 떨어트리고 조영욱의 발 앞에 정확하게 패스를 연결했다. 상대 수비와 조영욱이 움직이는 방향과 속도를 완벽하게 계산한 '명품 패스'였다. 차 감독은 "그런 패스가 이강인의 재능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정정용 U-20 대표팀 감독이 가장 공들인 자원이기도 했다. 의무 차출 규정이 없는 이강인을 데려오기 위해 직접 스페인으로 날아가 구단에 읍소할 정도였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것을 이강인이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조직력으로 승부를 걸었던 기존 대표팀의 색깔에 탄탄한 개인기와 감각적인 플레이를 더해 경기를 지배하는 모습이다. 6경기 도움 4개(1골)를 기록하며 FIFA 주관 세계대회 한국 선수 단일대회 최다 도움 기록자로 역사를 다시 썼다.

차 감독은 이강인에게서 '포스트 손흥민'의 모습을 봤다. 시계는 2018 러시아 월드컵으로 되돌아간다. 당시 16강 진출에 실패했던 한국은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이자 '세계 챔피언'이었던 독일을 꺾는 만화 같은 승리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차 감독은 "당시에는 상위 토너먼트에 올라가지 못한 게 아쉬운 나머지 팬들 사이에서 심한 비난도 나왔다. 하지만 나는 그때도 이걸 '하나의 사건'이라고 했다. 독일전 승리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대사건이었고 그 중심에는 손흥민이 있었다. 이후 한국 축구는 확실히 상승세를 탔지만 독일은 이후 유럽축구연맹 네이션스리그 2부 강등 수모까지 당했다. 당시엔 아무것 아닌 것 같아도 결국 이런 사건을 통해 큰 물줄기가 바뀐다"며 "이번 쾌거 역시 전 세계적으로 한국이 주목받는 기회다. 억지로 돈을 들인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일이 아니다. 이런 호재를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 한국 축구의 미래를 밝히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더 큰 그림을 제시했다.

이지은기자 number23togo@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