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빌런이 아니고 피해자라고?”

배우 진서연은 2년 전 이승준 감독과 첫 미팅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이승준 감독은 영화 ‘독전’(2018)으로 ‘센 언니’ 이미지가 강했던 진서연에게 “서연 씨의 기존 이미지만 보면 혜진 역할이 어울리지만 연주는 무조건 아이가 있는 엄마여야 한다”고 설득했다. 진서연이라는 배우가 가진 기존 이미지를 전복시키고 싶다는 뜻도 전했다.

이 감독의 설득에 진서연도 수긍했다. 그가 연기한 연주는 외교관의 아내다. 우아하고 고상한 ‘사모님’ 연주는 병약한 어린 딸을 수술시키기 위해 아동 유괴 및 장기 밀매업자들과 손을 잡으면서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

“연주는 아이를 유괴당한 엄마다. 역할에 몰입하기 위해 촬영 며칠 전부터 호텔에 나와 따로 지냈다. 집에서 아이와 재미있게 놀다 연주의 처절한 심경을 뻔뻔하게 연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일부러 세트에 찾아가 텅 빈 아이 방에 혼자 앉아 있곤 했다. 스태프들이 ‘왜 이렇게까지 하나’라는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연주의 감정을 갖기 위한 내 나름대로의 준비였다.”

진서연은 촬영 내내 연주의 삶을 살았다. 아이가 사라진 엄마라면 식음을 전폐해야 한다는 생각에 물도 마시지 못했다. 체중이 4~5Kg 감량 빠진 채 촬영에 임했다. 아이 방의 소품도 직접 배치했다. 그는 “스크린에서는 미세한 표정까지 잡히니 몰입할 수 밖에 없었다”며 “그렇게 힘들게 촬영을 마치고 집에 오면서 아이의 소중함이 배가됐다”고 말했다.

아쉬움도 남았다. 연주가 유괴당한 아이의 손가락을 발견한 뒤 오열하고 실신하는 장면에서 일부 신이 편집됐다. 진서연은 “모성의 끝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실신하는 장면을 찍을 때면 뇌에 피가 쏠려 온 몸이 저릿저릿해지는 신체적 변화까지 온다. 힘들게 찍었는데 편집돼 아쉬웠다”고 털어놓았다.

진서연은 촬영 때마다 자기 자신을 혹독하게 혹사시키곤 한다. 힘든 역할을 맡을 때마다 근육을 쪼개거나 감정이 널뛰곤 한다.

그는 “체력적으로는 ‘독전’이 가장 힘들었고 감정적으로는 ‘리미트’가 더 힘들었다. ‘독전’을 촬영할 때는 근육을 키우느라 매번 울었다. ‘이렇게 해서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하나’, 자조했다”며 “함께 연기호흡을 맞춘 이정현 언니, 문정희 선배처럼 자유자재로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선배들이 부럽다”고 웃었다.

◇할리우드 ‘센언니’ 캐릭터 도전하고파...하루 4시간 운동하며 근육 만들어

진서연은 연예계 소문난 운동 마니아기도 하다. 그의 친언니는 학창시절 육상과 태권도 선수생활을 했고 동생도 발레를 전공한 ‘스포츠패밀리’다.

요즘에는 배우 한효주, 성훈, 소녀시대 성훈과 함께 운동 크루를 꾸려 하루 4시간씩 운동한다. 필라테스와 웨이트, 수영 외 새로 배우기 시작한 무아이타이에 푹 빠졌다.

그는 “직접 액션연기를 해보고 싶어서 절권도, 태권도, 킥복싱 중 가장 기술이 많은 무아이타이를 배우기로 했다”며 “무아이타이의 기술을 모두 익히려면 몇 년이 걸린다고 한다. 한번 수업을 들으면 온몸이 땀범벅이 된다”고 설명했다.

흡사 태릉선수촌의 국가대표 선수처럼 운동에 매진하는 이유는 언젠가 자신에게 찾아올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진서연은 “미리 준비하면 바로 작품에 투입될 수 있다. 특히 해외에서는 근육이 쪼개지는 강인한 여배우가 각광받곤 한다. OTT활성화로 한국 작품도 세계로 뻗어나가는 만큼 세계시장에서 뒤지지 않게끔 준비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5살 아들의 엄마기도 한 진서연의 하루는 바쁘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 노동 및 육아가 기다리고 있다. 진서연은 “워킹맘은 시간을 동시에 써야한다. 집중해서 자기 대사만 외우는 남자배우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그렇다고 ‘애엄마니 이정도만 해도 되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은 내가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독전’과 ‘리미트’에서 진서연의 연기를 빛나게 한 배경은 그의 피나는 노력이었다.


조은별기자 mulgae@sportsseoul.com

사진제공|제이앤씨미디어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