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로 연예계에 입문한 뒤 약 3년의 준비 끝에 연기자로 전향했다. 3년이란 시간이 있었음에도 강동원을 짓눌렀던 건 수많은 스태프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나는 미쳤다”고 주문을 외우고 연기에 임했다. 위축되는 마음 때문에 현장에선 늘 조급했다고 회상했다.

벌써 20년 넘게 스무 편이 넘는 영화를 이끄는 사이 강동원에겐 여유가 생겼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자연스러운 액션이 나오며, 부담도 덜해졌다. 촬영장 가는 길이 두려웠던 2~30대와 달리 이제는 “오늘은 어떻게 표현을 할까?”라며 설레는 마음으로 현장에 도착하는 일이 늘었다.

그가 가진 여유는 신작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하 ‘천박사’)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화 ‘전우치’와 ‘검사외전’에서 보여준 익살스러운 표정이 영화 전반에 깔린 가운데 어느덧 얼굴에 덧칠된 노련미로 내면의 어두움을 표현한다.

강동원은 2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소재 커피숍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지금도 배우로서 부족한 점이 많긴 하지만, 예전보다는 자유로워진 것 같다. 성격이 내성적인 편이라 사람들 많은 곳에서 조심스러워지고 걱정도 많았다. 이제는 자신감도 생겼고, 경험도 있다 보니 자연스러워졌다”고 밝혔다.

◇강동원의 망언 “이젠 아저씨 같던데요?”

훤칠한 키와 조각 같은 얼굴은 강동원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수식어다. 유수의 영화감독들이 강동원의 아름다운 피사체에 의존했다. 상식적으로 설득이 안 되는 내용도 그의 얼굴로 무마할 수 있었다. 미모가 곧 설득력이 되는 몇 안 되는 배우 중 하나다.

‘천박사’ 역시 강동원의 얼굴에 의지한다. 오컬트와 판타지를 교묘히 섞은 코미디 영화인 ‘천박사’에서 강동원은 대대로 마을을 지키는 당주의 손자지만 귀신은 믿지 않는 천박사를 연기한다.

경제적으로 어렵던 중에 거액의 수임료를 주며 퇴마를 제안한 유경(이솜 분)을 만나 기이한 사건을 쫓는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과 연결된 ‘설경의 비밀’을 알게 된다.

사실상 강동원으로 시작해 강동원으로 끝난다. 이야기의 화자로 관객의 눈이 될 뿐 아니라 적재적소에서 액션을 선보인다. 카메라는 주요 순간 밀도 있게 강동원의 얼굴을 잡는다. 최대한 예쁘게 포장한다.

“배우가 얼굴이 잘 나오면 기분이 좋죠. 그래도 영화 보니까 세월이 묻어나는 것 같아서, 그게 좋았어요. 앞으로 40대 역할을 더 맡지 않을까 기대가 생겼어요. 늘 나이대보다 어려 보이는 역할을 연기했거든요. 미성숙한 캐릭터가 많았죠. 이번엔 성숙해 보이기도 하고 아저씨 같더라고요.”

◇“전우치 같아 보이면 다시 찍어, 완급조절 늘었다”

‘천박사’는 철저한 오락 영화다. “재미만을 위해 찍은 작품”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실제로 영화 초반부에는 천박사, 인배(이동휘 분), 황 사장(김종수 분)을 활용한 티키타카로 끊임없이 웃음을 창출한다.

“저희 영화는 비교적 가볍게, 재밌으려고 만든 영화예요. 소재나 스토리 자체가 신선한 편이죠. 장르도 다양하고요. 저를 보면 ‘전우치’나 ‘검사외전’이 떠오르긴 할 거예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다르게 보이려고 했어요. 완전히 배제할 수 없지만, 그래도 피하려고 했죠. 어딘가 전우치 같으면 다시 찍자고 했어요.”

중반부까지 코미디를 통해 이야기가 이어지던 ‘천박사’는 후반부 비밀을 알게 된 천박사와 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범천(허준호 분)과 처절한 격투가 펼쳐진다. 영화의 가벼운 톤이 걷히고 점차 무거운 표정을 짓는다.

“제가 분량이 많긴 하지만, 동휘나 이솜 씨, 허준호 선배님도 있어요. 제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사실이 부담되기도 하지만, 예전보다 완급조절은 늘지 않았나 싶어요. 제가 적당히 치고 빠져야 주변에서도 잘 놀 수 있잖아요. 다른 배우들이 멋있게 나온 걸 보면 그래도 제 역할은 하지 않았나 싶네요.”

◇20년만에 ‘유퀴즈’로 예능 출연 “좋은 사람 포장 부담”

강동원은 예능 출연을 극도로 꺼리는 배우 중 하나다. 홍보 활동도 무대인사와 기자 인터뷰를 제외한 다른 활동은 자제하는 편이다. 그런 그가 최근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했다. 거의 20년 만이다.

“예능을 굳이 꺼리는 건, 별로 할 얘기가 없기 때문이죠. 그런 프로그램에 나가면 제가 좋은 사람처럼 보이잖아요. 저 그렇게 좋은 사람도 아닌데, 포장되는 게 부담스러워요. 정말 오랜만에 나왔는데, 40살 넘은 저에게 관심이 꽤 크더라고요.”

오롯이 연기만 하는 그다. 시나리오 완고를 한 적이 한 번 정도 있으나 이 역시도 좋은 연기를 하기 위한 훈련에 가까웠다. 좋은 연기자가 되는 것만이 목표인 그가 중시하는 건 ‘현실 감각’이다.

“배우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현실감각을 잃어버리면 안 돼요. 늘 뉴스를 틀어놔요. 또, 다양한 분야 사람들과 어울리고 소통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분들에게 영감도 많이 받아요. 이제는 현장이 정말 재밌어요. 예전에는 스트레스도 있었는데, 그런 것도 없어요. 이걸 잘 즐기면서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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