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는 흐름이다. 이례적인 프리에이전트(FA) 시장 흐름에 따라 최대어가 계약이 늦어지거나 예상보다 작은 규모의 계약을 맺는다. 그러면서 2024 메이저리그(ML) FA 시장 야수 최고 규모 계약을 예약한 샌프란시스코 이정후(26)다.
이정후는 지난해 12월 샌프란시스코와 6년 1억1300만달러(약 1505억원) 보장 계약을 맺었다. KBO리그에서 빅리그로 진출한 선수 중 처음으로 1억 달러 벽을 넘었다. 당연히 역대 KBO리그에서 메이저리그(ML) 진출 선수 최대 규모 계약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이다. 이정후 계약 후 긴 시간이 지났고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도 한창인데 야수 1억 달러의 벽이 깨지지 않고 있다. 가장 유력해 보였던 코디 벨린저가 26일(한국시간) 전소속팀 시카고 컵스와 3년 8000만 달러에 계약했다. 야수 최대어로 꼽혔고, 디 애슬레틱에서 FA 랭킹 4위에 오른 벨린저인데 예상한 규모보다 적은 금액에 사인했다.
벨린저뿐이 아니다. 이정후보다 FA 예상 랭킹에서 높은 곳에 있는 야수들이 여전히 미계약 상태거나 이정후 계약 규모에 반도 미치지 못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맷 채프먼은 미계약, 리스 호스킨스는 밀워키와 2년 3400만 달러, 제미어 칸델라리오는 신시내티와 3년 45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이정후 동료과 된 호르헤 솔레어 또한 계약 규모가 3년 4200만 달러에 그쳤다.
물론 타석에 서는 선수 중 오타니 쇼헤이라는 예외가 있다. 그런데 오타니는 투타를 겸업한다. 미국 스포츠 역대 최고 10년 7억 달러에는 오타니의 투수와 타자로서 가치가 두루 담겨있다. 즉 오타니를 빼고 순수하게 야수로 시선을 좁히면 이정후가 이번 겨울 빅리그 최고 몸값을 기록할 전망이다. 채프먼이 이정후의 1억1300만 달러를 넘지 못하는 한 그렇다.
이정후가 이번 스토브리그 슈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의 유일한 성공작이 될 수 있다. 보라스는 1억 달러를 넘지 못한 벨린저를 포함해 블레이크 스넬, 조던 몽고메리, 채프먼을 두루 고객으로 뒀다. 이번에도 보라스가 우수 고객을 앞세워 시장을 싹쓸이할 것 같았는데 결과는 정반대다. 즉 보라스 고객 중 1억 달러를 돌파한 유일한 이도 이정후가 될 전망이다.
여러 가지 말이 돈다. 몇몇 구단이 의도적으로 보라스와 거리를 둔다는 해석도 있다. 그동안 보라스의 뜻대로 거액을 쏟아부었던 구단이 이제는 보라스에게 끌려다니지 않으려 한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보라스는 USA 투데이와 인터뷰에서 "구단은 쓸 수 있는 돈이 충분히 있다. 하지만 써야 할 돈을 쓰지 않는다. 돈을 쓸 능력이 없는 게 아닌데 연봉 총액을 삭감하는 것을 더 신경 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모든 제안을 열어두고 있다. 여전히 2월이라는 것을 기억하라"고 반전이 일어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스코츠데일 | 윤세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