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 한 방울은 가볍다. 하지만 그 색이 옷 위에 내려앉는 순간, 하나의 신호가 된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옷차림이지만 선거철의 눈으로 보면 ‘정치’로 읽힌다.

오는 6월 3일 조기대선을 앞두고 거리의 열기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각 정당은 상징색을 전면에 내세우며 유권자의 선택을 독려하고 있다.

이때 연예인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다. 바로 ‘색’이다. 그들이 입은 옷의 색, 들고 있는 휴대폰 케이스의 색, 혹은 사진 속 무심코 지은 손가락 브이(V) 하나조차 정치적 해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 해 전 김희철은는 투표 인증샷을 올렸다가 곤욕을 치렀다. 투표장에 평범한 차림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옷 색이 특정 정당의 상징색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온라인상에서 거센 의혹이 불거졌다.

EXID 하니는 SNS에 기표 도장이 찍힌 손등 사진을 인증샷으로 올리며 “참 어렵던 이번”이라는 글을 올렸다가 ‘이번’이라는 단어가 특정 후보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모델 정호연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루이비통 패션쇼에서 오프닝을 장식, 첫 번째 순서로 런웨이에 올랐다. 당시 그는 프랑스 파리를 장소 태그로 걸며 ‘1’이라는 숫자가 적힌 종이 사진을 올렸다. 이를 두고 일부 네티즌은 특정 후보에 대한 투표 독려이라는 추측을 내놨다. 입고 있던 청바지(파란색)를 이와 엮기도 했다.

매 선거철 휴대폰 케이스 하나, 손가락 포즈로도 같은 논란이 반복된다. 과한 해석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지만 소속사 입장에서는 ‘아예 피하는 것이 상책’이란 분위기다. 일부 소속사들은 관련 논란을 피하기 위한 ‘선거철 행동 지침’까지 공유하고 나섰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선거철만 되면 의상 코디, 사진 포즈까지 사전에 다 점검한다. 손가락 브이 포즈도 요즘엔 자제하라고 한다. 특정 정당의 캠페인 이미지와 겹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논란이 커지는 경우가 많아서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편”이라고 전했다.

정치색과 무관한 일상조차 의심받는 풍경. 누군가는 연예인들이 더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일각에서는 그 기준이 과하다고 지적한다.

한 대중문화 평론가는 “정당의 상징색과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연예인의 표현을 제한하거나 비난하는 건 오히려 과도한 정치화. 의상 색깔 하나로 정치적 프레임을 씌우는 건 무책임한 소비”라고 꼬집었다.

연예인은 대중과 가까운 존재다. 그만큼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파급력이 크다. 그러나 그 영향력을 과도하게 정치적 해석으로 몰아가게 되면, 표현의 자유는 점점 좁아진다.

투표의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연예인들은 ‘무채색의 존재’가 되길 강요받는다. 우리는 지금, 그 침묵마저 색으로 해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khd998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