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급 행보다.

임영웅이 정규 2집 ‘아임 히어로 투(IM HERO 2)’를 8월 발표하는 가운데,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이번 앨범에는 CD가 없다. 음원만 스트리밍으로 공개된다. 대신 팬들을 위한 화보와 글이 담긴 ‘앨범 북’ 형태만 제작된다.

전례 없는 결정이다. 이로 인해 임영웅의 신보는 음반 차트 집계 대상에서 제외된다. ‘앨범 북’은 가온, 헌터 등 주요 음반 판매 집계 시스템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발매 첫 주 판매량을 뜻하는 ‘초동’ 기록도 없다. CD 판매량을 기준으로 삼는 순위 경쟁과 시상식에서도 불리한 조건이다.

소속사 물고기뮤직은 “CD 앨범을 실질적으로 감상하기 어려운 환경, 팬들의 정성과 응원이 팬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환경적인 고민까지 고려해 결정됐다”고 밝혔다.

임영웅의 이번 결정은 K팝 산업 전반의 기형적인 관행에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왜 앨범을 사는가.’

지금의 피지컬 앨범(CD 앨범)은 음악 감상보다, 부수적인 도구에 가깝다. 차트 진입 경쟁, 팬사인회 응모권 확보, 포토카드 수집 등 다양한 이유로 한 사람이 여러 장을 구매하는 일이 일상화됐다. 실제로 음악은 듣지 않고, CD는 개봉조차 되지 않은 채 쌓이거나 버려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음악은 사라지고, 숫자만 남는다.

이 탓에 ‘100만 장 밀리언셀러’라는 상징도 과거와 의미가 달라졌다. 앨범 한 장이 한 사람의 청취를 뜻하던 시절과 달리, 지금의 밀리언셀러는 중복 구매와 수집 욕구에 의해 만들어진 수치다. 더 이상 100만 장 판매가 ‘국민 가수’ 등극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앨범은 수십만 장 팔렸어도 대중이 모르는 음악이 부지기수다.

환경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K팝의 피지컬 앨범은 오랫동안 과대 포장, 플라스틱 낭비, 폐기물 문제를 안고 있었다. 비판은 꾸준히 있었지만,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앞장서는 아티스트도 없었다. 누구도 CD 판매에 따라오는 이익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임영웅이 나섰다. CD를 뺀 정규 앨범이라는 기존 틀을 깨는 선택은 초동 성적과 차트 경쟁력을 자발적으로 내려놓은 결정이다. 대신 음악적인 진정성과 실질적인 가치에 집중했다. 음악은 스트리밍으로 감상하고, 앨범은 팬들을 위한 형태만 남겼다.

임영웅의 선택이 업계 전반의 즉각적인 변화를 이끌기는 어렵다. 대다수 기획사와 아티스트는 여전히 피지컬 앨범 판매에 의존하고 있는 탓이다. 팬덤 중심의 차트 전략도 무시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하지만 ‘CD 없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첫 사례를 임영웅이 써내려간다는 데 의미가 크다. K팝 산업이 낳은 부작용을 바꿀 수 있는 전환점의 시작이다.

“임영웅이니까 가능한 전략”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미 굳건한 팬덤을 바탕으로, CD 발매 없이 인기와 수익을 감당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임영웅이니까 가능한 도전”이기도 하다. 정상에 선 아티스트라면, 기득권을 내려놓더라도 K팝 산업을 위해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아무도 나서지 않으면 K팝의 곪은 병폐는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다. 임영웅이 선봉장에 섰다. 수익은 포기했지만, K팝 역사에는 개혁을 선도한 인물로 임영웅의 이름이 새겨질 것이다. roku@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