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情) 때문에!’ 
한국인 메이저리거 야수들이 하루에 홈런 두 방을 포함해 5안타 3타점 4득점 1도루를 합작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모인 공간에서 연일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그 배경에 한국 선수들만의 독특한 ‘정’(情)이 담겨있어 눈길을 끈다.

우선 ‘킹캉’ 강정호(29·피츠버그)가 의미있는 기록을 세웠다. 빅리그 데뷔시즌부터 2연속시즌 두자릿수 홈런을 때려냈다. 강정호는 23일(한국시간) PNC파크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와 2016 메이저리그 홈경기에서 3회말 호쾌한 솔로 홈런을 때려내 시즌 10호 홈런을 기록했다. 지난해 15홈런으로 KBO리그 출신 야수들의 빅리그 진출에 교두보 역할을 했는데 빅리그 데뷔 첫 두 시즌 연속 두자릿수 홈런을 때려내며 위용을 과시했다.  

강정호의 절친이자 ‘타격기계’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김현수(28·볼티모어)도 이날 샌디에이고와 홈경기에서 시즌 11번째 멀티히트(한 경기 2안타 이상)를 때려내며 팀 승리를 견인했다. 빅리그 터줏대감 추신수(34·텍사스)도 글로브라이프파크에서 열린 신시내티와 홈 경기에 8회말 호쾌한 좌월 솔로 홈런으로 시즌 2호 대포를 터트렸다. 한 점차 살얼음판 리드에서 벗어나는 의미있는 홈런이라 동료들의 격한 축하를 받았다. 고교시절부터 추신수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한 이대호(34·시애틀)는 디트로이트 원정길에 시즌 첫 4번타자로 나서 안타 한 개를 때려내며 식지 않은 타격감을 뽐냈다. 하지만 박병호(30·미네소타)는 필라델피아전에서 벤치 신세를 져 아쉬움을 남겼다.

최근 박병호만 주춤하지만 다른 선수들은 연일 맹타를 휘두른다. 추신수야 고교졸업 후 마이너리그에서 눈물젖은 빵을 먹으며 최고 스타 반열에 올랐지만 KBO리그를 발판삼아 빅리그에 입성한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은 놀라운 적응력으로 현지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1세대 메이저리거로, 한국인 최초의 포지션 플레이어였던 최희섭(37) 본지 객원기자(MBC스포츠+ 해설위원)는 “한국만의 끈끈한 선후배 문화가 적지않게 힘이 된다”고 말했다. 최희섭은 “혈혈단신으로 미국에 가면 막막할 수밖에 없다. 언어와 문화, 음식이 다르기 때문에 향수병도 자주 생긴다. 이럴 때마다 형들이 전화나 문자 등으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나같은 경우는 (서)재응이 형이나 (박)찬호 선배님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먼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배들이 가족같은 심정으로 후배들을 챙긴다는 것이다. 끈끈한 선후배 정은 미국이나 일본 선수들은 잘 이해할 수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다. 아마추어시절 이렇다 할 친분관계가 없더라도 같은 무대에 서면 친형제처럼 가까워지기 마련이다. 특히 타향에서 다른환경과 사투를 펼치는 상황이라면 동병상련의 심정이 더 커질수밖에 없다. 지난해 빅리그에 입성한 강정호도 “(류)현진이나 (추)신수형이 틈 날 때마다 문자와 전화로 격려했다. 경기장에서 만나면 아무리 바쁘더라도 꼭 식사를 함께 하며 많은 얘기를 나눈다. 야구얘기를 꼭 하지 않더라도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된다”고 돌아봤다. 올해 시범경기 때부터 슬럼프에 빠진 김현수 역시 추신수와 강정호, 류현진의 격려 메시지 덕분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떨쳤다고 밝혔다.

후배들과 만남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추신수는 “길고 혹독한 마이너리그 생활을 할 때 선배들의 격려가 없었다면 포기했을 것이다. 선배들에게 받은 사랑을 후배들에게 나눠주는 게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KBO리그에서는 선후배 문화 때문에 적잖은 잡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가슴에 태극마크를 품고 장도에 나선 메이저리거들은 오히려 이 끈끈한 정으로 뭉쳐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 힘은 앞으로 빅리그에 도전장을 내밀 선수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여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의 특별한 전통이자 문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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