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임 기간) 대부분 한국에 상주할 것이다. 거주하면서 사람과 문화를 경험해야 한다.”

시곗바늘을 지난 3월9일로 돌린다. ‘포스트 벤투’ 타이틀을 달고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신임 사령탑에 선임된 위르겐 클린스만(59·독일) 감독은 파주NFC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취임 5개월이 지난 현재 약속과 정반대 행보여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국내 상주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따른 비판을 넘어 각종 오해 소지가 발생하고, 국내에서 뛰는 K리거의 동기부여가 실종되고 있다는 우려 목소리가 나오면서다.

국내에서 최상위 대표팀인 A대표팀에 고액 연봉을 주고 외인 사령탑을 앉히는 건 여러 상징적 의미가 있다. 명성에 걸맞은 선수 선발과 대표팀 운영은 물론이요, 각급 대표팀 코치진과 유연한 소통, 더 나아가 유소년 등 국내 축구 문화를 들여다보면서 소통하고 노하우를 심어주기를 바란다.

2010년대 외인 사령탑으로 지휘봉을 잡은 울리 슈틸리케(독일),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감독 모두 진득하게 국내에 상주하며 이런 역할에 소홀히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차세대 A대표팀 주력 요원으로 거듭날 만한 새 얼굴 발탁도 꾸준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2014년 말 부임해 무명의 이정협(강원)을 발탁해 2015년 호주 아시안컵 준우승 주역으로 키운 적이 있다. 벤투 감독도 초기부터 지난해 말 카타르 월드컵 본선까지 4년을 한국과 동행하면서 이재익(서울이랜드) 정상빈(미네소타) 양현준(셀틱) 조규성(미트윌란) 등 미래 자원을 발탁해 대표팀 내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반면 클린스만호는 출범 이후 두 번 소집하고 A매치 4경기(2무2패)를 치렀지만 베스트11을 포함해 대표팀 자원이 이르게 고정화했다는 시선이 따른다. 그 이면엔 클린스만 감독부터 국내에 머무는 기간이 짧고 유럽파 중심의 선수 관찰, 동기부여를 매긴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5개월여 동안 국내에 머문 건 60여일에 불과하다. 3개월여는 해외에 머물렀다는 얘기다. 물론 3개월 내엔 카타르 아시안컵 조 추첨 행사에 참석하거나, 유럽파 태극전사를 현장에서 점검하는 등 ‘출장 업무’가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 기간을 합쳐도 3주가 채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미국에서 ‘원격 근무’였다.

특히 5월 11일 아시안컵 조 추첨을 마친 뒤 애초 국내로 들어올 예정이었는데 미국에서 원격 근무를 하다가 6월2일이 돼서야 입국했다. 그리고 16일 페루, 20일 엘살바도르와 A매치 2연전을 치른 뒤 ‘여름 휴가’를 목적으로 4주간 미국으로 휴가를 떠났다. 휴가 중 독일로 건너가 월드컵 우승 33주년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해당 기간 K리거 점검은 차두리 어드바이저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다가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달 24일 여름 휴가를 마치고 다시 입국했다. K리그 올스타 브레이크에 맞춰서다. 사흘 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팀K리그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을 현장에서 관전했다. 자연스럽게 K리그 재개에 맞춰 국내에서 선수 파악에 주력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돌연 입국 열흘도 안 된 지난 1일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KFA에 따르면 그는 생일(7월30일)을 맞아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 떠났다.

클린스만 감독은 미국에 머물다가 이달 2023~2024시즌을 맞이하는 손흥민(토트넘)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등 유럽파 자원을 현장에서 점검하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확정된 건 아니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당분간 국내로 들어오지 않고 9월 A매치 첫 경기가 예정된 영국 웨일스로 이동해 현지에서 대표팀을 소집할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클린스만호는 안드레아스 헤어초크 수석코치와 파울로 스트링가라 코치, 안드레아스 쾨프케 골키퍼 코치, 로이타드 피지컬 코치 등이 유럽에 상주하며 유럽파 자원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내세웠다. 그런데 사실상 클린스만 감독까지 해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고 있다. 유럽파가 대표팀 내 중심이고 이강인, 김민재 등 주력 요원이 올여름 새 팀으로 이적한 만큼 대표팀 수장이 가까이서 지켜봐야 할 점은 있다.

그러나 ‘1차 미션’인 내년 1월 아시안컵을 앞두고 지나치게 유럽파에 편중된 시각을 지녔다는 목소리가 따른다. 오죽하면 K리거 사이에서는 클린스만 감독이 아닌 국내 사정을 잘 아는 차두리 어드바이저 눈에 들어야 대표팀에 갈 수 있다는 인식이 들어차고 있다.

무엇보다 클린스만호는 출범 이후 승리가 없다. 그래서 최초 약속과 다르고 대표팀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잦은 미국행’에 불신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출범 초기여서 당장 평가전 성적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클린스만 감독조차 예상보다 첫 승이 늦어지면서 예민해지고 있다. 9월 A매치 소집을 앞두고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황선홍 U-24 대표팀 감독과도 중복 선수 차출을 두고 충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분위기라면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아시안컵을 앞두고 대표팀 내 건전한 경쟁과 발전이 이뤄지지 않으리라는 견해가 따른다. 유럽에 상주하는 코치들과 원격 회의로도 충분히 대표팀 운영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클린스만 감독 스스로 자충수를 두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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