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A대표팀 새 사령탑 선임을 두고 4개월간 우여곡절을 겪은 대한축구협회(KFA) 전력강화위원회는 현실적 조건과 지속 성장을 위한 리더십에 초점을 두고 후보군을 좁히고 있다. 불확실성이 큰 외인 사령탑을 무리하게 선임하지 않고 국내 사령탑까지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전력강화위는 지난 18일 서울 모처에서 비공개 9차 회의를 진행했다. 앞서 다수 에이전트가 KFA에 제출한 이력서만 100장 가까이 된다. 
그러나 익히 알려진 대로 KFA는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의 위약금, 천안축구센터 건립 비용 마련 등으로 재정이 여유롭지 않다. 지난달 제시 마쉬 등 명성을 지닌 외인 사령탑과 협상에서 연봉을 비롯한 기본 조건에 부합하지 못해 어긋난 게 대표적이다.
정해성 위원장을 중심으로 전력강화위는 물론, KFA 역시 제대로 현실을 느꼈다. 
결국 재정을 고려해 현실적인 후보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다. 다만 지난 9차 회의에서 화두로 떠오른 건 효용성과 지속 발전 가능성이다.
KFA가 염두에 두고 있는 연봉 20억원 안팎 수준을 받아들일 A급 외인 지도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반면 A대표팀은 손흥민(토트넘)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이재성(마인츠) 등 역사상 세계적 수준의 선수가 가장 많이 주력으로 뛰고 있다. 2000년대 들어 한국 축구는 성장을 거듭하면서 수많은 외인 사령탑을 뒀으나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감독 외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가 없다. 가뜩이나 실패 확률이 큰 외인 사령탑인데, 조건에 맞춘 어설픈 선임은 현재 국제 경쟁력을 지닌 대표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견해가 많다.
저렴한 연봉으로 기대 이상의 외인 사령탑을 선임했다고 하더라도 한국 축구의 지속 발전을 고려한 선택이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국은 지난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당시 벤투 감독 체제에서 후방 빌드업 색채를 고수하며 16강 성적을 냈으나 클린스만 감독 시대 이후 장점을 크게 잃었다. 월드컵 주기로 단기 성적에 매몰돼 돈은 돈대로 쓰고, 지속성을 얻지 못한다는 축구계 비판이 적지 않았다. 국내 사령탑에 대한 긍정론이 다시 나온 계기다.
K리그 뿐 아니라 국내에서 활동하는 다수 감독도 과거보다 다양한 게임 모델로 호응을 얻고 있다. 
한국 A대표팀도 세계적 수준의 선수가 뼈대를 이루는 만큼 이들과 유연하게 소통하면서 장점을 끌어내고, 장기적인 플랜을 제시하는 게 중요한 시대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력강화위 한 위원은 "이젠 우리만의 것을 잘 만들어야 하는 단계 아닐까. 
월드클래스급 선수가 많은 데 어설픈 조건으로 리스크가 큰 외인과 함께하는 것보다 국내 지도자와 연계해서 지속성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력강화위는 가까운 시일 내에 10차 회의를 연다. 최종 후보를 선정할 예정이다.  

김용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