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글로벌화 과정에서의 오래된 K팝의 고질병이 다시 드러나고 있다. 늘어나는 영미권 현지화 그룹에 ‘불협화음’이 나오면서 새로운 도화선이 될지 주목된다.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의 미국 현지화 다국적 걸그룹인 비춰(VCHA) 멤버 케이지(KG)가 팀을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스태프로부터 학대를 당했다는 게 요지다. 너무 강경한 발언에 충격이 적지 않은 편이다. 그간 근무환경 혹은 계약 조건 등을 문제 삼아 소속사와 갈등을 빚은 사례는 더러 있었지만, 영미권 멤버가 직접 문제를 제기한 건 처음이다. 이번 사건의 향방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비춰는 JYP와 유니버설뮤직 그룹 산하 레이블 리퍼블릭레코드가 손잡고 진행한 글로벌 프로젝트 ‘A2K’로 결성된 한미 합작 걸그룹이다. 미국인 4명, 캐나다인 1명, 한국·미국 이중국적자 1명으로 구성됐으며 지난 1월 데뷔했다.

하지만 3월 싱글 발매 이후 특별한 활동을 이어오지 않아 팬들의 불안감이 커진 바 있다.

케이지는 지난 8일 자신의 SNS를 통해 “특정 스태프들에게 괴롭힘과 학대를 겪은 후 JYP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종료하고 비춰를 떠나기로 결정했으며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케이지는 장문의 글에서 근무 환경과 생활 환경이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는 한 멤버가 극단 선택을 시도하게 만든 근무 환경과 생활 환경을, 섭식 장애를 유발하고 멤버들을 자해하게 만드는 환경 역시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대해 JYP는 반박했다. 케이지가 지난 5월 그룹 숙소를 이탈했고 회사는 비춰의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며, 케이지가 허위 및 과장된 내용을 공표했다고 맞섰다.

그러면서 “이는 25년 상반기 앨범 발매 및 다양한 계획을 열심히 준비 중에 있는 비춰의 다른 멤버들과 당사에 큰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며 향후 케이지와 소속사 간의 법정분쟁을 시사했다.

최근 가요계에는 ‘K’ 없는 K팝 그룹이 줄줄이 나오고 있다. 일본, 중국 등 아시아권을 공략하던 기획사들도 영미권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하이브, SM, JYP 등은 영미권 대형 레이블과 손잡고 최근 1~2년 새 영미권을 겨냥한 현지화 그룹을 만들었다. 하이브의 캐츠아이와 SM의 디어 앨리스가 대표적이다.

국적을 초월한 K팝 그룹들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의 닻을 올렸으나, 제대로 활약하기도 전부터 불협화음이 들리고 있다. 주기적으로 제기된 K팝 시장의 고질적인 병폐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데뷔한 지 4개월 만에 팀 이탈을 선언한 케이지는 K팝 그룹 트레이닝 과정의 강도가 세다는 점을 언급했다. 극심한 통제 속에서 부채를 쌓은 점을 K팝 사언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이돌 육성 구조는 일반인들이 잘 알 수 없는 폐쇄적 구조에서 이뤄진다. 초기 계약 과정에서 자본금을 대는 기획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계약이 이뤄진다. 다른 산업에 비해 7년이라는 긴 전속계약 기간 동안 기획사의 통제를 받는다. 해외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운용된다. 국내 연예기획사의 아이돌 관리 방식의 고질병이 다국적 그룹에서도 그대로 터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JYP에서 케이지의 입장에 반박했기 때문에 사실 관계는 법정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가요계에선 케이지 개인의 일탈이 아닌 문화적 차이에서 기인한 K팝 육성시스템의 한계점에 비중을 두고 있다. 개인주의 문화에 익숙한 영미권 멤버에 맞춘 더 세밀한 방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외국인 멤버 개인의 문화적 차이로 인한 부적응인지, 혹은 멤버들을 혹사하는 K팝 기획사 자체 시스템의 그늘인지 그 기로에 선 문제라고 볼 수 있다”며 “K팝 시스템을 이식한 다국적 멤버들로 구성된 이들이 K팝시장을 지속, 확장할 수 있는 대안으로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리스크 매니지먼트가 어렵다는 문제점도 다시 불거졌다”고 말했다. jayee212@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