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안방극장을 지켜보면 익숙한 듯 낯선 얼굴들이 시청자를 맞이한다.

알고 보면 그들은 수백만 구독자를 거느린 크리에이터들이다. 웹툰 작가 출신 침착맨, 여행 크리에이터 빠니보틀과 곽튜브, 유튜브 걸밴드 QWER이 그 주인공이다. 이제는 이들이 예능의 중심이 되고 프로그램의 고정 멤버로 활약하고 있다.

방송국 입장에서 이러한 인물들은 ‘모험’이 아닌 ‘보장된 카드’로 인식된다. 유튜브에서 이미 캐릭터와 팬덤을 확보한 인물은 프로그램 초반부터 시청자의 주목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자극적인 연출 없이도 캐릭터가 살아있다. 팬들이 꾸준히 지지를 보내는 구조도 안정적이다. 덕분에 제작진은 그들만의 콘텐츠 감각과 개인 서사를 방송에 녹여내는 데 주력한다.

한 방송 관계자는 “일반인 섭외는 리스크가 크다. 오히려 유튜버들이 더 안전하다. 대부분의 유튜버는 이미 대중성 검증이 끝난 인물들”이라며 “팬덤이 있고, 장기간 미디어에 노출되면서도 큰 논란 없이 활동한 점이 신뢰를 더한다. 자연스럽게 방송의 주인공이 됐다”고 분석했다.

시청자의 피로도 역시 변화의 중요한 동력이다. 기존 방송 예능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얼굴들, 정형화된 캐릭터에 대한 피로는 오래전부터 누적돼왔다.

유튜버들은 방송 문법에 익숙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 낯섦이 신선함이 된다. 즉흥적인 리액션, 예측 불가능한 말과 행동, 그리고 무대 밖에서 다져온 솔직함이 새로운 활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대중은 ‘다 아는 사람’보다 ‘처음 보는 얼굴’에게 더 많은 호기심을 갖는다. 유튜브 스타는 그 욕망을 충족시키는 최적의 대상이다.

이와 동시에, 오랫동안 브라운관의 중심에 있었던 스타들은 유튜브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배우 고소영은 딸과 남편 장동건의 생일상을 준비하며 가족과의 일상을 공유하고, 선우용여는 벤츠를 몰고 이태원 거리를 누비며 80대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준다.

이미숙은 민낯 그대로 “이제는 나를 더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며,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또 다른 얼굴을 꺼내놓는다. 이들의 영상에는 조명도 대본도 없다. 대신 담백한 목소리와 진심, 그리고 일상의 작은 리듬이 있다.

이들이 다시 유튜브 앞에 선 이유는 변화한 미디어 환경과 콘텐츠 구조 때문이다. 드라마와 영화는 줄어든 제작 편수와 타깃 연령층의 변화로 중·장년 배우들의 서사를 담기 어려워졌다. 이들이 새로운 선택을 모색하게 된 주요 원인이다.

특히 40대 이상의 여성 배우를 중심으로 한 작품은 좀처럼 기획되기조차 어렵다. 즉, 기존 방송 플랫폼에서의 ‘배역’이 줄어든 지금, 배우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주인공’ 삼아 유튜브라는 무대를 선택한 셈이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예전 같았으면 자연스럽게 은퇴 수순으로 이어졌을 법한 시점에, 이들은 스스로를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며 “특히 사적인 영역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던 배우들이 유튜브를 통해 일상을 콘텐츠로 바꾸는 모습은 대중에게도 신선하게 다가온다”고 짚었다.

미디어의 중심축은 이미 옮겨갔다. 방송국은 유튜버를 향해 문을 열고 배우는 유튜브로 향한다. 그렇게 바뀐 무대 위에서 자신을 다시 정의하는 이들의 존재감은 오히려 더 단단하고 또렷하게 빛나고 있다. khd998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