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판 유승민' 부재로 싱거운 결과
변화 목소리 컸지만 한정된 선택지
평소 비판 앞장선 스타들 도전없어
결국 행동하지 않으면 현상 유지뿐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강했다. 현실적 선택지는 너무 좁았다.
제55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를 보는 축구계, 대중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선거인 192명 중 무려 183명이 현장 투표에 나설 정도로 참여율이 높았다.
결과는 싱거웠다. 정몽규 회장이 156표를 획득, 87.5%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4선에 성공했다. 정 회장이 아닌 나머지 두 명의 후보(신문선ㄱ허정무)에게 표를 던진 선거인은 26명에 불과했다. 무효표는 1표다.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없던 건 아니다. 정 회장은 최근 몇 년간 행정 난맥상에 부딪히며 입지가 위태로워졌다. 아시안컵 유치 실패, 범죄 축구인 기습 사면, 대표팀 감독 선임의 불투명성 등 여러 문제로 축구계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국회에 불려 가 혼쭐이 났다. 문화체육관광부 감사 이후 중징계 요구도 받았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리더가 나와야 한다는 요구가 따랐다. 혁신을 기대하는 것과 달리 신선하고 역동적인, 후보가 없었다는 게 선거인단의 주된 평가다. 일각에선 축구계 '카르텔'을 지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 선거인은 "솔직히 정 회장이 최고의 후보여서 뽑은 건 아니다"면서 "한국 축구의 변화를 이끌 것 같은 후보가 있었다면 그 쪽에 투표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신선한 후보가 없었다. 개혁을 약속한 정 회장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또 다른 선거인도 "지난해 정 회장이 국회에서 현안질의에 답하는 것을 보면서 더는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당시 목소리를 내고 비판했던 젊고 인지도 있는 축구인은 아무도 선거에 나오지 않더라. 누군가를 뽑아야 하는데 다른 두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현장에서 만난 선거인단 대다수의 의견을 종합하면 정 회장이 정말 좋아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뽑았다는 결론을 내려도 무방하다.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한 것과 다름 없다.
지난해 정 회장이 대중의 비판을 받을 때 축구계의 은퇴한 스타도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정작 선거 국면에 등장해 개혁에 앞장 선 축구인은 없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 안 나왔다고 핑계 댈 수 없다. 대한체육회 사례가 있다. 선거를 앞둔 시기까지만 해도 이기흥 전 회장의 3선이 유력해 보였지만, 유승민 후보가 당선했다. 선거인단으로부터 신선하고 역동적인 새 리더로 불리며 대반전을 이뤄냈다.
축구계에서도 유승민 같은 캐릭터가 나왔다면 돌풍을 일으킬 분위기가 감지됐다. 현실은 정 회장과 이미 축구계에서 어느 정도 스타일이 알려진 두 후보가 출마했을 뿐이다.
축구계에서 상징성인 큰 2002 한일월드컵 멤버, 국가대표 출신 스타는 당시 목소리를 내며 축구협회와 정 회장 비판 대열에 합류한 바 있으나 누구도 총대를 메지 않았다. 최근 박지성이 아시아축구연맹(AFC) 프로페셔널 축구위원회에서 활동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그 역시 정 회장의 행보에 반대한 인물이다. 출마는 개인의 선택이고 자유지만 그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한국 축구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누군가 나서지 않으면 현상만 유지된다는 교훈을 남긴 선거다.  

정다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