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앞날에 대해 답답하거나 불안하면 주술이나 점궤에 현혹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들은 대개 애매모호해서 듣는 이의 사정에 따라 유리한대로 해석되기 마련이다.
2200여 년 전 중국 진나라 상인 중에 여불위라는 대부호가 있었다. 어느 날 정부 고위관리들의 모임에 갔다가 큰 굴욕을 느꼈다. 제 아무리 엄청난 재력가라 해도 장사꾼이라는 이유로 그들로부터 푸대접을 받은 것이다.
재물로는 실제적인 권력을 탐닉할 수 없음을 깨달은 그는 왕을 만들어 내세워 권세를 잡을 거창한 계획을 세운다. 마침 인근 조나라에 인질로 가 있는, 서열로 봐도 6-7번 밖으로 밀려있어 별 볼일 없는 자초왕자를 점찍고 전 재산을 건, 말하자면 일생일대의 마지막 도박을 한다. 그리고는 먼저 본국에서 제일 윗자리 큰 황후에게 인심을 사기 위해 엄청난 재물 공세로 사전공작을 한다. 우여곡절 끝에 천운의 기회는 오고 드디어 자초왕자로 하여금 본국에 돌아와 세자로 책봉되게 한다. 일이 되려는지 앞서 왕들이 일찍 죽고 드디어 자초가 왕위에 오른다.
그런 와중에 일찍이 자초에게 바친 자신의 애첩으로부터 아들이 태어났는데 이 아이는 실상 여불위의 씨였다. 후에 중국 천하를 통일하여 진나라를 세우고 처음으로 황제라 칭했다 해서 진시황제라 불린 바로 그 인물이다.
황제가 된 진시황은 오랑캐 호(胡)를 조심하라는 누군가의 점궤를 믿고 변방의 오랑캐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다. 진시황의 폭정이 심해지자 그를 암살하려는 자객들이 나타나는데 그 중 형가라는 검객이 있었다.
드디어 그가 황제 앞에까지 가는데 성공하여 살해하려는 순간 이에 당황한 진시황이 움칫 물러서려 할 때 곁에 있던 시녀의 기지로 진시황은 구사일생한다. 시녀는 이를 어여삐 여긴 진시황으로부터 성은을 입고 아이를 낳았는데 오랑캐 출신 여인에서 태어났다 해서 호해(胡亥)라 이름 지었다.
후에 진시황이 지방시찰 중 사망하자 간신 환관 조고는 황제의 칙서를 고친 후 큰 왕자를 죽이고 멍청한 호해를 왕위에 앉혀 정사를 제 마음대로 주무른다. 그러다가 조고는 호해까지 척살하고 국정을 농단하고 관료들을 농락하던 끝에 결국 살해되고 진 나라는 무너졌다. 경계하라는 오랑캐는 외적이 아니라 오랑캐 핏줄 아들 호해(胡亥)였던 셈이니 점궤가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듯 싶다. 흔히 왕은 그 누구도 범접 못하는 지고한 존엄의 상징으로 용(龍)에 비유된다. 그러나 세상에는 용(龍)조차도 우습게 보는 간 큰 무리도 있게 마련이다. 해서 용(龍)을 땅(土)위 높은 언덕에 올려놓고 좌지우지하면 이를 농단(壟斷)이라 하고 용(龍)을 대나무(竹)로 만든 장 속에 가두고 쥐락펴락하면 이는 농락(籠絡)이라 일컫는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선 용과 의자매를 맺으면 '미르'라 한다.
다시 2200 여 년 후 한국에서 절대 권력자도 누군가의 계시를 받았다. 순수한 마음을 갖고 진실한 태도의 인사를 곁에 두라는 점궤였다. 그래서 배신의 정치는 찍어 내고 진실한 듯 보이는 동지만이 내 편이라고 껴안는 한편 순수한 마음으로 믿고픈 누군가와 국사를 논의했다. 헌데 일이 요상하게 터졌다. 순수하고 진실한 줄 알았던 순실님께서 용을 새장에 가두고 땅위에 놓더니 작두 타듯 올라타서 한바탕 굿판을 벌인 거다. 헌데 이 판에 환관 조고 같은 십상시들까지 끼어들어 거나하게 놀아났다. 오호, 통재라! 이를 불안해하며 바라만 보던 관중들은 이제 배신의 꼴불견에 분노하고 둘러싼 좀비귀신들을 내쫓기 위해 '시굿선언'을 하며 살풀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할꼬! 또 다른 내시들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저 굿판 뒤치다꺼리마저 기웃거리며 입신양명의 부적 하나 얻으려고 손을 비벼대며 주문을 외고 있으니 말이다. 오호, 애재라!
2016-11-08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