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대사의 것으로 알려진 ‘눈밭을 걷다(踏雪野)’라는 시(詩)가 있다.
‘눈 덮인 들길을 걸어갈 때 발걸음을 어지럽게 하지 마라. 오늘 남긴 내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의 길이 될 것이니’.
나의 행위가 남의 이정표가 될 수 있으므로 항상 올바른 자세로 겸손하게 해야함을 가르치고 있는 거다. 동시에 이는 뒤에 오는 이가 다른 사람 아닌 내가 될 수도 있음 또한 명심하고 잘못을 거듭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말하고 있다. (여러 인사들도 종종 인용하는 이 시는 후에 조선 후기 시인 이양언의 ‘야설(野雪)릫로 판명되었다.)
매 순간 충실하게 살아라고 하는 이 가르침은 잘 알려진 라틴어 명구 ‘카르페 디엠(Carpe Diem)’과도 일맥상통한다. 카르페 디엠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영어선생이 학생들에게 남겨주면서 널리 회자 되었던 말로 ‘그 날에 충실하라’는 뜻이다.
아울러 이 말과 항상 동반되는 또 다른 라틴어 구절들로 사람은 누구나 죽으니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고 하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나 ‘삶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라’는 ‘아모르 화티(Amor Fati)’도 따지고 보면 모두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렇게 못하는 것이 우리네 모습이다. 해서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해봤으면 하고 후회하는 때가 적지 않다. 이는 즐겁고 좋은 일은 반복되어도 좋겠지만 잘못된 일은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어서인데 그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은 연습이나 반복이 없는 단막극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음악에서 사용하는 ‘다 카포(Da Capo)’가 더욱 아쉽고 그리워지는 이유다. 다 카포는 ‘처음부터’라는 뜻을 가지는 음악 용어로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되풀이하라는 말이니 우리네 삶도 그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렇다고 종국엔 죽어야 하는 생명체의 운명의 한계에 한숨지울수만은 없을 거다. 꼭 ‘믿는 이들에게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라 영원한 삶에로 들어가는 관문’이라는 신앙적 고백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로마 철학자 세네카가 ‘모든 시작은 또 다른 시작의 끝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했듯이 죽음 역시 새로운 시발점을 의미하기 때문이 아닐는지.
영어권에서 졸업을 나타내는 graduation과 commencement 중 graduation이 과정마다 매듭을 짓는 거라면 commencement는 ‘시작’이라는 의미가 더해져 있는 셈인데 그러고 보면 이 두 단어를 하나로 묶은 우리 말의 ‘끄트머리’라는 단어가 참으로 절묘하다. ‘끝’이라는 말과 ‘머리’ 혹은 ‘일의 실마리’라는 두 가지 뜻이 함께 담겨 있으니 말이다. 끝을 단순히 어떤 일의 마무리로만 여기지 않고 새로운 시작으로 보는 시각을 지니고 있는 예지가 번득이지 않는가?
이제 끄트머리의 시간.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출발의 머리에 올라섰다. 21세기 팬데믹으로 지루하고 힘겨운 시간들을 잘 견뎌온 우리 모두에게 부디 새해엔 좀더 나은 날들로 채워지길 바라면서 또 다른 라틴어 명구에 이런 말도 있음을 상기해 주고 싶다. ‘혹 쿠오퀘 트란시비트(Hoc quoque transibit). ‘이 또한 지나가리라’
2022-01-04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