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전설적인 인물로 남은 파우스트는 대문호 괴테가 전 생애에 걸쳐 쓴 희곡의 주인공으로 재각색되면서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 모든 지식을 다 갖춘 학자 파우스트는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세상에 대한 환멸과 우울로 생을 마감하려 한다. 이 때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나 젊음을 되찾아 줄테니 대신 영혼을 팔지 않겠느냐고 유혹한다.
이에 파우스트는 무한한 지식과 세속적인 쾌락을 위해 자신의 영혼과 교환하기로 계약한다. 지식의 극점을 향하는 욕망과 젊음에 대한 향수로 목숨을 담보로 삼은 거다.
최정상을 정복하고 싶은 야망과 동경은 탑클래스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강렬할 것이다. 특히 국제경기 운동선수인 경우엔 더할 지도 모른다. 1992년 의학자 밥 골드먼은 세계 정상급 선수들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릫당신이 모든 경기에서 우승할 수 있게 하지만 5년 뒤에 사망할 수도 있는 마법의 약이 있다면 복용하겠는가?’ 이 물음에 선수들 중 반 이상이 ‘그렇게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이른바 ‘골드먼 딜렘마’라고 불리는 약물의 갈등이다. 비록 후에 1% 정도로 바뀌기는 했지만 말이다.
소위 도핑으로 불리는 약물의 역사는 오래됐다. 그리스 고대 올림픽 선수들은 물론 전차 경주 선수들은 여러 약초를 섞어 만들어 마셨다. 북유럽 바이킹들은 버섯의 일종으로 만든 약에 취해 적에게 칼을 휘둘렀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피로를 잊게 하기 위해 세칭 ‘히로뽕(필로폰)’을 군인은 물론 노동자에까지 투약했다.
스포츠 도핑의 역사도 전쟁만큼이나 오래됐다. 특히 19세기 이후 유럽에 스포츠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선수들의 약물 이용도 늘었다. 주로 아편 등의 여러 약물을 복용하다가 20세기 들어 과학이 발달하면서 합성 약물이 개발돼 선택의 폭도 넓어진 거다. 세계반도핑기구(WADA)에 따르면 전체 선수의 44%가 금지약물을 복용하지만 적발되는 건 0.5%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러한 도핑은 육체적 스포츠뿐만아니라 정신 스포츠라 불리는 비디오게임이나 체스, 바둑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도핑 검사가 실시되면서 일부 선수들은 금지 약물과 비슷한 효과를 내지만 아직 금지 목록에 오르지 않은 약물을 찾는 거다. 심지어 자신의 피를 뽑아두었다가 경기 직전 수혈해 산소량을 증진시키는 ‘자가수혈’이나 최근에 개발되고 있는 유전자 도핑도 있다.
얼마전 끝난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피겨스케이팅 최고 스타인 카밀라 발리예바의 도핑 사실이 드러나면서 러시아가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러시아는 이미 국가차원의 조직적인 도핑 조작의 전력이 있어 올림픽 출전에 금지 당한 상태다.
러시아의 도핑 스캔들은 첩보 영화를 방불케 했다. 암호 ‘귀부인 칵테일’ 이라 명명된 작전이었다. 약물을 하기 전 선수의 깨끗한 소변 샘플을 미리 받아 놓는다. 경기가 시작되면 미리 나눠준 여러 금지 약물과 술을 섞은 칵테일을 마신다. 그리고 경기를 마친 뒤 샘플을 제출하면 정보기관 요원이 샘플 보관소에 잠입해 약물 성분이 든 샘플과 미리 받아놓았던 깨끗한 샘플을 바꿔치기하는 방식이었다. 이마저 빙산의 일각이라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 러시아의 이번 사태를 보면서 ‘귀부인 칵테일’ 대신 떠오르는 칵테일이 있다. ‘파우스트 칵테일’. 그 칵테일의 붉은 색과 진한 질감은 악마를 닮았고 그 달달한 맛과 독한 도수는 악마에게 영혼을 바칠지언정 떨쳐버릴 수 없는 달콤한 유혹을 의미한다고 하니 말이다.
2022-03-08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