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클한 산책
김준철
별일 없는 저녁,
밥 잘 먹고 부른 배 두드리며 산책에 나선다
조금은 불길한 듯 평화로운 공원 주위를
그녀와 걷는다
어색하지 않은 침묵 속에서
서로의 호흡을 들을 수 있었고
자연스레 발걸음도 맞춰졌다
걸으며 우연히 서로의 팔이 부딪히자
그녀가 손을 잡는다
어린 시절, 그녀의 손을 잡고
하늘 높이 휘저었듯 이젠 그녀가 나의 손을 흔들며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눈치를 본다
여전히 침묵 속, 발을 옮긴다
굳이 가 닿을 곳 없이 걷는다
뜬금없이 그녀가 묻는다
안 힘들어?
별안간 목이 메고
그녀의 손으로부터 뭉클한 온기가 전해진다.
치받혀 오르듯 목이 조여 오는 온기
거세던 호흡이 잦아들고
휘젓던 팔도 걸음을 따라 작게 흔들릴 뿐
어미의 슬픔이
막 공원의 가로등 불을 켜고
내 가슴 한구석을 내려 본다
여러 지면으로 발표된 작품 중 하나가 ‘뭉클한 산책’이다.
개인적으로 아주 썩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가며 오히려 온기를 느끼게 되고 아끼게 된 글이다. 큰 설명이 필요치 않는 시로써 천천히 읽어 보시길 바란다.
처음 미국살이를 시작하고 몇 년 되지 않았을 때 일이었다.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막막한 시기였다. 영어도 잘 안되고 목표도 안정해져 흔들리던 시기였다.
하지만 딱히 특별한 일이 없는 평범한 저녁. 우린 그런 평범한 어느 시기에 내 안에 숨겨놓은 또 다른 나와 불쑥 맞닥드리게 되는 날이 있다.
예상치 못한 일상의 흔들림.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지론을 여전히 가지고 살지만 그건 대부분의 삶에 대한 평균적 통계이거나 내가 살아오며 상처를 받고 흉터가 된 기억의 추론일 것이다. 어쨌든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어지는 울컥이게 만드는 온도가 있다.
나만의 고민이나 아픔에 빠져 있다가 순간의 스침과 공감함이 어느새 어미의 슬픔으로, 위로로 다가온 기억이다.
2022-10-21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