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봄
지난해 내게 왔던 매화꽃이 다시 왔다
엄혹한 날들을 얼마나 치열하게 지나왔는지
알고 있는 바람이
꽃잎 위에 앉아 희디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목을 젖히며 웃고 등을 가볍게 때리기도 하는
그들의 대화는 출렁거린다
조릿대 이파리마다 맑은 햇살이 내려와
이파리를 투명하게 닦고 있다
---중략----
사막을 지난다 싶으면 동반자를 보내주고
패배의 날들이 지속된다 싶으면
벌판 끝에 풀꽃들이 기다리고 있게 해 주는 이
거칠고 사나운 것들과 맞서는 동안에도
영혼 안에 맑은 기운이 사라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이
그이가 햇살과 바람을 보내시는게 아닐까 싶다
참혹한 순간이 와도 나는 하늘을 올려다 본다
비참해진 날에도 오물을 씻어내며
내게 오던 햇살과 바람을 생각한다
지난 해 왔던 매화꽃이 나를 향해
진군해 오는 이유를 나는 안다
밝고 얇은 봄볕이 댓잎에 앉아 햇살대패로
그 잎을 환하게 문지르고 있는 이유를 나는 안다
설명이 필요없는 도종환시인의 신작시 ‘초봄’의 일부분이다.
이번에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창간하게 된 계간 ‘K-Writer’ 겨울호에 실린 작품이다.
아직은 이른 2월이지만 조급하게 봄을 기다려 본다. 엄혹하고 참혹한 시간들을 버틴 것은 그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그 시간 위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굳이 어떤 이유를 알지 않터라도 큰 문제는 없다. 봄은 아직 조금씩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고 있으니까
2023-02-17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