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번의 연주를 노래함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3.
손 끝이 가늘게 떨리며
삶의 한 귀퉁이를 지긋이 누르자 비가 내렸다
어둠의 기억 속,
깊숙이 던져지는 잡음들
어지럽게 널려져있던 검은 눈물방울의 악보들이
땅으로 떨어지며
쓰러져있던 그의 하얀 손가락을 덮는다
깊은 잠 속에서
쏟아지는 땀 방울들이 살아나
빠르게 건반을 누르고
비는 더 빠르게 더 많이
숨막히게 다가오는 생명의 소리들
건반 위를 산책하는 비의 발자국,
창가에 멈춰 선다
영혼의 느린 유형처럼
손가락의 더딘 음색이 창가에 비치고
나를 떠난 나의 깊은 떨림
한번 만으로도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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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샤인’으로 천재 피아니스트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거기에 순수한 사랑의 온기와 한없는 절망이 아닌 재기의 감동도 함께 전해준다.
피아니스트 사이에서 악명높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합주곡 3번. 주인공의 신들린 연주와 그것을 영상으로 담아낸 연출력이 압도적이다.
모든 것을 내어주고 단 한번의 만족스런 표현을 원하는 것, 그 대상이 다를 수는 있겠으나 우리 모두의 마음에 간절한 염원으로 담겨진 그 무엇을 건드리는 영화이다.
영화를 보고 이 시를 읽고 다시 눈을 감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합주곡 3번을 들어본다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권해본다.
2023-03-24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