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혹은 검은 눈물
김준철
배넷저고리를 입고 싶다
처음 세상과 나를
격리시켰던
부드러운 온기의
그 하얀,
직사각형의 방
살아온 길이로 누워
탯줄인 양 못 박고
나를 격리시킬
그 검은,
담은 만큼 무거워지고
버린 만큼 투명해질지도 모른다고,
담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가느다란 삶만큼이나 휘어지는 허리로
탯줄 끌고 기어 나온다
바람불면바람맞고
비내리면비에젖고
갈리우고쪼개어져
너덜너덜흔들리는
마른풀처럼해어진
참을만큼참아봐도
견딜만큼견뎌봐고
먹먹하게메워지는
덜어내도이내차고
잘라내도솟아나는
이제 가는 길에 입을
이 단단한 검은 옷 벗고
하얀 베냇저고리 입으면
예전처럼 독하고 다부지게
그리고……
너무나 하얗게 울 수 있을 것 같다
오래 전에 쓴 시이다. 참 많이 쓰러지던 시기에 쓴 글이다. 살다보니 마음처럼 욕심을 낼 수 없는 순간이 종종 오는 것 같다. 욕심껏 다 움켜쥐고 싶기도 하고 또 양껏 배를 채우고 싶기도 하다. 반면 다 버리고 놓고 가벼이 그 자리를 떠나고 싶기도 하다. 어쩌면 매 순간 세상살이라는 것이 그런 결정의 순간들일지 모른다. 누구나 처음 태어남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우린 그 마지막의 경험은 없다. 하지만 그 처음의 마음으로 마지막의 다짐을 되새기고 싶은 마음에서 이 시를 쓴 것 같다. 아직 하얗게 울진 못하고 있다.
2023-04-07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