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목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지난 번에 이어 이번에는 K-Writer 여름호 문정희 시인의 대표작 중에 하나인 ‘남편’이라는 시를 소개하겠다.
이 시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참 쉽다. 라는 생각이었다. 하나하나 옳은 말이고 공감이 가고 또 바꾸어 생각해도 그닥 틀리지 않은 이심전심의 마음을 담백하게 잔잔한 웃음과 함께 녹여둔 것 같다.
우린 다들 그렇게 누군가의 누구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 역할에 대해 고민도 없이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나는 내 주변의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로 있는 것일까?
그녀가 말하는 그녀의 남편은 나 일수도 또 당신일 수도 있고 또 그 누구도 아닌 문정희 시인만의 유일한 남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마음을 끄는 마지막 싯구처럼 그렇게 처절하게 전쟁같은 사랑을 나눈 전우일 것이다.
2023-10-19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