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한민족의 혈통적, 언어적, 문화적 뿌리는 만주와 발해 연안에서 비롯됐다는 이론이 정립되고 있다. 이러한 작업에 설득력을 한층 강화시켜준 것이 바로 내몽골 적봉 지역 인근의 홍산문화 발굴이다.
윤내현, 심백강, 이덕일 등의 고조선사 재정립은 단재나 위당의 고조선사 바른 이해를 위한 선구자적 연구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한다. 조선사 편수회의 조수였던 이병도나 신석호에 의해 정립되고 전승된 식민사관이 그릇됐다는 점을 반증한다.
단군신화로 알려진 한민족의 시원역사보다 황하문명의 중국이 먼저 시작되었다는 상식은 틀렸다. 고조선 개국의 현장이라고 추정되는 홍산 하가점 하층문화가 중국의 황하문명보다 1000년 이상 앞선다. 고조선이 발해 연안과 내몽고 (열하지역) 인근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중국의 역사문헌에도 밝혀져있고, 오늘날의 지정학적 상식에도 부합된다고 본다. 홍산문화의 고고학적 증거와 '사고전서' 사료 분석은 이를 충분히 뒷받침하고도 남는다.
우리 고대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반드시 부딪히게 되는 것이 중국 상고사와의 합류점이다. 상나라 즉 은나라가 동이족의 역사라는 것은 중국 역사학자 부사년 (1890-1950)의 '이하 동서설'이래 중국학자들조차 부정할 수 없는 학설로 자리잡았고, 고힐강 (1893-1980)의 투철한 고증학에 바탕을 둔 객관적 논증으로 중국학계의 아전인수적 고대사 해석에 쐐기를 박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강단사학과 재야사학의 두 갈래로 나뉘어 한쪽은 일제 식민사관의 관점을 묵수하고, 다른 한편은 자아도취적 국수사관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때 고대 한민족의 형성을 동아시아적 콘텍스트에서 찾으려는 여러 학자들의 노력에 깊은 인상을 받게된다. 하버드 대학 한국학 연구소는 최근까지 한국 고대사 연구 프로젝트 'Early Korea Project'를 이끌어온 Mark Byington 에 의하여 적지않은 학문적 성과를 남기고 있다. 역시 하바드 대 정치학과 교수 사무엘 헌팅턴 (1927-2008)이 주장하였듯이 결국 동아시아는 중국의 한족 황하문명과 동이족의 막내로서 근대에 힘을 발휘했던 일본문명의 각축장이었다.
한중일의 고대사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수천 년의 정치역사를 개관해볼 때 우리가 배운 역사상식의 허실이 저절로 드러난다. 중국 역사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동이족 출신의 왕조사가 이러한 역사적 시선의 정당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북방의 흉노는 그 강력한 전투력으로 중원 왕조 한나라를 좌지우지할 정도였지만 중국에 통일왕조를 세우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호십육국, 수, 당, 요, 금, 원, 청나라 등은 아예 오늘날 중국 전역에 해당하는 영토를 지배하였다. 1912년 중국이라는 국호가 처음 등장하기 전 중국 대륙은 동이족의 일족인 여진 (만주)족으로 부터 시작한 청나라가 지배하였으니 동아시아는 최근세사까지 동이족과 하화족의 각축장이었던 셈이다.
2018-08-03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