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연구하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p53단백질은 악명이 높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암이 생기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것이 바로 이 p53 유전자이기 때문이다. 전체 암 발생의 절반 이상에서 이 유전자의 변이가 확인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유전자가 처음 발견된 것은 1979년이다. 그런데 돌연변이를 일으킨 상태로 관찰돼 암을 촉진하는 단백질로 여겨졌다. 그러다가 1989년에 이르러서야 이 유전자가 원래는 암을 막는 유전자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유전자는 세포가 DNA 손상이 되면 그 세포의 성장을 정지시키고 손상된 세포를 수리하거나, 수리가 불가능한 세포는 세포자살(Apoptosis)을 유도해 없애 버리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유전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이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확산되면 암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p53유전자의 돌연변이는 지방과 유사하게 생겼으면서 세포 막에 존재하는 지질전달자 (lipid messenger)와 열충격단백질 (heat shock protein)과 매우 관련이 깊다는 사실이 위스콘신대 리처드 앤더슨과 빈센트 크린스 교수에 의해서 밝혀졌다. 이 발견은 p53단백질의 활성영역이 세포의 정중앙인 세포핵에 있는 반면에 이 지질전달자는 세포막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p53유전자의 돌연변이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런데 이 연구에서는 PIPK1-알파라는 효소과 이 돌연변이와 연관성이 있다는 것도 함께 발표됐다. 하버드대 의대의 조안 브루게 세포생물학 교수는 여러 유형의 암 발생 과정에서 p53의 역할을 생각하면, 이 연구결과는 "암 연구의 새롭고 중요한 통찰"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앤더슨 박사는 이미 20여년전에PIPK1-알파 효소와 분자 단위가 작은 '열충격단백질(HSP: heat shock protein)'을 발견했고 그 단백질을 HSP90로 명명한 바있다. HSP는 세포나 조직, 개체가 생리적 표준보다 높은 온도에 노출됐을 때 합성되는 단백질이다. 분자량에 따라 다양한 특성을 보이며, 변성 단백질 등의 선택적 분해 효소로 작용한다.
발견의 핵심은, p53의 돌연변이를 제어하는 지질 전달자를 생성하는 게 바로 PIPK1-alpha 효소라는 사실이다. 지질 전달자가 p53에 꼬리표를 붙이면, 이 꼬리표가 p53를 원래 기능을 해제해서 열충격단백질과 상호 작용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면 활발하게 세포를 보호하던 p53가 종양의 왕성한 성장을 유도하는 쪽으로 역할을 바꾼다는 게 연구팀의 결론이다.
뉴욕주립대 암센터의 우테 몰 교수는 이번 연구가 "암 치료 약 개발의 새로운 표적 두 개를 열었다"면서 PIPK1-알파 억제와 HSP 합성 차단을 예로 들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항암제로서 제대로 시도되지 못했던 p53단백질과 관련된 연구가 PIPK1-alpha 효소를 억제하고 HSP의 합성을 차단하는 쪽으로 전개될 수 있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왜 p53유전자가 우리 세포의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2019-05-08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