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일 밤 10시28분, 한국이 격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게임을 선포하면서 시작됐다. 비상계엄은 시민들의 저항과 야당의 발 빠른 대응으로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내란 혐의를 받고 있는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실패하면서 그 여파는 현재진행형이다. 국민들의 윤 대통령 탄핵 요구는 전국적인 시위로 나타나면서 제2의 촛불 시위로 번지는 사이 경찰과 검찰의 윤 대통령 내란 혐의 수사도 탄력을 받고 있다. 
 하지만 실패로 끝난 비상계엄에는 여전히 의문점들이 남아 있다. 비상계엄의 전모는 향후 관계 기관의 수사로 드러날 것이다 다만 현 시점에서 그 의문점들을 풀기 위한 단초들은 비상계엄에 관련된 군 관계자와 정부 관계자들이 한국 국회에 나와 밝힌 증언들 밖에 없다. 긴박했던 12·3  비상계엄의 전말을 지금까지 나온 증언과 확인된 보도들을 중심으로 결정적 장면들로 재구성해 봤다.

남상욱 기자

장면 #1
조지호 경찰청장 "대통령이 급히 찾으신다 해서 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3시간 전쯤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을 서울 삼청동 안전가옥(안가)로 불렀다. 조 청창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30분경 "대통령께서 급히 찾으신다"는 연락을 받고 안가로 갔다. 오후 7시쯤 김 청장을 만났고 이 자리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도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체포 대상 정치인 10여명 명단과 국회, 선관위, MBC, 여론조사 꽃 등 주요 점령 지점을 지목하고 국방부 형식의 릫계엄 작전 지휘서릮를 전달했다. 윤 대통령은 5분 이상 일방적으로 계엄의 정당성을 설명했고 참석자들은 거의 듣고만 있었다.

장면 #2
윤 대통령 "누군가와 의논하지 않았다"
비상계엄 선포 관련 국무회의는 3일 오후 10시17분 대통령실 접견실에서 열렸다. 이 국무회의에 걸린 시간은 딱 5분이었다. 이날 참석한 국무위원 중 송미령 농축산식품부 장관에 따르면 회의에선 계엄을 선포할 것이라는 사실 외에 구체적인 실행 계획 등은 전혀 공유되지 않았다. 회의에서 계엄 반대를 명시적으로 반대한다는 표현을 한 국무위원은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조태열 외교부 장관 2명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5분 동안 국무회의에 머무른 시간을 2~3분이었다. 송 장관은 "회의를 마친다는 선언 없이 대통령은 나갔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당황하는 사이에 누군가 휴대전화를 들었는데 계엄을 선포하는 대통령의 육성이 흘러 나왔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는 통상적인 개폐 선언이 없었고 속기 등 별도의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장면 #3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대통령이 부수고 들어가 의원들 끌어 내라 지시했다"
곽종근 사령관은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난 후 4일 9시30분부터 40분 사이 윤 대통령과 두 차례 비화폰 통활를 했다. 곽 사령관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국회 의결 정족수가 아직 다 안채워진 것 같으니 빨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의원들을 끄집어내라고 했다. 곽 사령관은 지시를 듣고 현장 지휘관들과 공포탄 사용 여부와 단전 조치 등을 논의했지만 현장 지휘관들의 불가하다는 의견이 받아들여져 실행되지 않았다. 당시 국회로 출동한 김현태 707특임단장도 "사령관에게 더 이상 무리수를 두는 것은 위험하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707특임단장은 "707부대원들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이용당한 피해자"라며 "부대원들은 죄가 없고 죄가 있다면 무능한 지휘관의 지시를 따른 죄"라고 말했다.

장면 #4
홍장원 전 정보원 1차장 "윤 대통령이 싹 다 잡아들여 정리하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직후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홍 전 1차장에 따르면 이 전화 통화에서 윤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여 정리하라는 지시와 함께 국정원에게도 대공 수사권을 줄 테니 우선 방첩사령부를 도와 지원하고 자금이면 자금, 인력이면 인력 무조건 도우라는 지시를 내렸다. 홍 전 1차장은 이후 여인형 방첩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방첩사령관은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10여명의 명단을 불러주며 검거를 위한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홍 전 1차장의 거부로 결국 체포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장면 #5
김대우 방첩사 수사단장 "지하B1벙커 내 구금시설 확인하란 지시받았다"
김대우 방첩사 수사단장은 비상계엄 당일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정치인 등 주요 인사에 대한 체포 및 구금 지시를 받았다. 김 단장은 구금시설에 대해 "처음 지시받기로는 지하 B1 벙커 안에 구금할 수 있는 시설이 있는지 확인하라고 지시받았다"고 언급했다. 김 단장이 언급한 B1 벙커는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관할 지휘통제 벙커로, 유사시 한국군의 실질적인 전쟁 지휘부 역할을 맡는 군사상 핵심 시설이다. 여 방첩사령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요인들을 체포해 구금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정황임에는 틀림없다.

장면 #6
윤 대통령·김용현, 계엄해제 결의후 릫결심실릮 회의
4일 새벽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한 직후 대통령실에서 같은 경내에 있는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을 찾은 윤 대통령은 통제실 내부에 마련된 별도의 보안 시설인 릫결심지원실릮(결심실)로 들어갔다. 소수의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합참 결심실은 릫보안시설 안의 보안시설릮로 꼽힌다. 윤 대통령은 결심실에서 김 전 국방부장관, 박안수 계엄사령관 등 세 사람만이 참여한 가운데 별도의 밀실 회의를 했다. 결심실 밖에 있던 실무진은 계엄법과 국회법 등 법률 관련 내용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보아 계엄 해제를 위한 법적 절차 점검과 불복을 위한 2차 계엄 실시를 포함한 시나리오 모두를 검토한 것으로 추정된다.
윤 대통령은 국회의 해제 결의에 침묵을 지키다가 3시간 20분이 지난 뒤 4일 오전 4시27분 "국회의 요구를 수용하여 계엄을 해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뒤 이어 국무회의는 오전 4시30분께 계엄 해제를 의결하면서 비상계엄 사태는 일단락을 지었다.